청빛 바람 그득한 흙길을 걸으면
생각의 잎사귀들이 파파파 넓어진다
그림자가 가벼워지는 시간
영혼에 풀물이 스미는 시간
내 속의 어지러운 나, 우수수 흩어지고
파릇한 정맥에 새 길이 나는 걸 예감할 때
호젓이 야생으로 점화되어
온몸에 속잎이 자라고 꽃이 피어 마침내 나
멀고 가까운 초록 풍경이 된다
약해지는 탓에 우리의 ‘두려움 리스트’는 점점 늘어간다. 우리는 갑자기 공격해 올 타인이 무섭다. 사람 관계에서 받는 상처도 두렵다. 타인이 너무 두려워 혼자이길 택했더니 이번에는 공허함이 두렵다. 혼자 텅 빈 공간과 시간을 감당하는 일이 고통으로 느껴져 견딜 수 없다. 진퇴양난이다. 이렇게 약한 나를 알아보았는지 온갖 매체, 인터넷, 상품이 설득한다. 나를 선택하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다고. 그 말이 진실이기를 믿었으나 현대인의 두려움과 외로움은 그치질 않는다.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우리는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을 배우고 싶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색에 빠지고 싶다. 그렇다면 외로운 은둔자가 되는 대신에 고독한 산책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 분들에게 이 시를 추천한다. 이 시는 ‘고독한 산책자’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지러운 내면을 붙잡고 우는 대신 밖에 나가 걷기로 한다. 걷다 보면 마음의 독성이 중화되고 영혼이 맑아진다. 눈길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머무는 법이니까. 가급적 걷는 길이 초록 산길이면 더 좋겠다. 요즘은 산책자 되기에 적절한 나날 아닌가. 우리의 마음은 약하더라도 초록 풍경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으니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