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붕괴 이후 스파이 세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제1 공적(公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 국가방첩관실(ONCIX)은 2011년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 14개 정보기관의 견해를 취합해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미국의 경제 정보와 기술을 훔쳐 국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했다. 미 정부가 중국 산업스파이를 노골적으로 지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이 ‘우정의 핀’을 선물했지만 도·감청을 우려한 미국 대표단은 아무도 달지 않았다.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하는 트럼프 정부의 경계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스파이 행위에 활용될 수 있다며 사용금지령을 내린 데 이어 최근 중국인 학자들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한 ‘방첩(防諜) 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FBI가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회과학 분야 교수, 연구원 등 30여 명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거나 취소 검토 대상에 올린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학자들의 중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배서하다’ ‘보증하다’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vise’가 어원인 비자(visa)는 1차 세계대전 때 군사 스파이의 입국을 막기 위해 제도화됐지만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미중은 1년 넘게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신(新)냉전시대 버전의 ‘비자전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게다가 최근 독일 영국 등 동맹국들이 ‘화웨이 보이콧’을 거부하자 미국은 플랜B 모색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4주 내에 무역전쟁이 결판난다”고 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잘해야 어설픈 봉합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초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