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의 무대였던 이라크가 ‘중동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한 외교 보폭을 넓히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0일 이라크 정부 주최로 바그다드에서 사우디와 이란을 포함해 터키, 시리아, 요르단, 쿠웨이트 등 각국 대표단이 한 자리에 모여 중동 지역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오랜 시간 서로에게 가감 없이 적대감을 드러내왔던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시아파 맹주 이란 정부 대표단이 국제행사에 함께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이라크 의회 의장 무함마드 알할부시는 성명을 통해 “(중동) 지역적인 운명과 공통의 관심사는 우리를 이웃으로 묶어준다. 이라크와 이웃 국가들의 관계는 굳건하다”고 밝혔다. 참가 국가들은 3년여에 걸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등으로 빚어진 혼란을 끝내고 국가 재건 사업을 시작하는 이라크의 안정과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합의했다. 또 중동 지역 내 안보 및 경제, 외교 문제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전쟁과 테러 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이라크는 지난해 10월 새 정부를 꾸린 뒤 본격적인 회복 작업에 나섰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라크가 주변국과 ‘실리외교’를 통해 국가 재건 사업과 외교적 영향력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시아파 정치인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17일 사우디를 방문해 살만 사우디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차례로 만났다. 당시 이라크 총리실은 양국이 무역과 에너지 등 여러 부문에서 합의서 12건, 양해각서 1건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 방문은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이란을 찾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을 만난 지 열흘 만에 이뤄졌다.
다만 AFP통신 등은 “이날 국제회의에서 이라크의 안정이 중동 지역 안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공감대 이상의 외교적 합의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