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심장]
페루 리마의 한 약국 건물 외벽에 ‘녹스 아웃’ 페인트를 이용한 작품이 그려지고 있다. 사진 퍼시픽 페인트 제공
‘벽을 거대한 공기 청정기로 만들면 어떨까?’
필리핀에서 가장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많은 장소에서 이것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필리핀의 페인트 제조업자와 유통업자가 산화질소(NOx)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같은 대기 속 오염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페인트를 개발해 상용화했기 때문.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주로 발생하는 NOx는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물질로 잘 알려져 있는 대기 오염 물질이다. 산성비와 스모그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녹스 아웃(KNOxOUT)’이라 불리는 이 페인트는 필리핀의 주식회사 퍼시픽 페인트에서 발명했다. 이 페인트는 산화질소를 분해해 무해한 물질로 만드는 초미세 이산화티탄(titanium dioxide)을 함유하고 있다.
대기 속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페인트 ‘녹스 아웃’을 이용해 필리핀 간선도로 인근 벽에 그린 허파 모양의 나무들. 녹스 아웃 페인트로 1㎡를 칠하면 1년에 산화질소를 160g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품 실험과정에서 확인됐다. 이는 나무 한 그루가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진 퍼시픽 페인트 제공
녹스 아웃은 빛 에너지로 활성화 돼 산화질소를 질산으로 변환할 수 있게 한다. 이후 알칼리성 탄산 칼슘 입자에 의해 빠르게 중화돼 질산칼슘, 물, 유해하지 않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생성한다. 니그리트 부팀장은 “엄청난 투자와 실험으로 10년 전 처음 제품을 생산해 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대기 오염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닐라에서 가장 붐비는 철도역을 이 페인트로 칠하는 실험 과정에서, 퍼시픽 페인트는 녹스 아웃으로 1㎡를 칠하면 1년에 산화질소를 160g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인 나무 1그루와 맞먹는 공기 정화 능력이었다. 런던 킹스 컬리지의 최근 연구 결과는 마닐라에서 이뤄진 실험 결과를 공식 승인했다. 퍼시픽 페인트 측은 “녹지사업이 어려운 도시에서는 이 페인트로 벽을 칠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는 ‘프로젝트 EDSA’로 구체화 됐다. ‘프로젝트 EDSA’는 필리핀의 간선도로 인근 벽에 허파 모양의 나무와 다양한 미술 작품을 그려 넣는 것. 존슨 옹킹(Johnson Ongking) 퍼시픽 페인트 부사장은 아시아 퍼시픽 코팅 저널에 “프로젝트 EDSA로 도시의 주요 도로들을 미술 작품 전시장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빛 에너지로 움직이는 거대한 공기 청정기를 가장 오염된 도로 인근에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술의 아름다움과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 도시의 추한 문제인 대기 오염을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는 페루, 콜롬비아, 미국 등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퍼시픽 페인트 측은 터널이나 버스 터미널, 주차장, 빌딩 주차장 입구, 인도 등이 녹스 아웃 페인트를 이용할 적절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형광등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실내에 활용할 수도 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한 병원에서는 병원 건물 전면에 벌집 모양으로 녹스 아웃 페인트를 칠해서 정화된 공기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터널, 프랑스 파리의 실내 주차장 등에서도 녹스 아웃 페인트가 사용되고 있다.
얀 빅토르 R. 마테오(Jan Victor R. Mateo) 필리핀 ‘더필리핀스타’ 기자
번역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