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산불, 인재라 단정 못해” 최문순 지사 발언에 사죄 촉구 대책위 “한전과 협상에 부적절”
강원 고성·속초 산불 피해 주민들이 22일 오전 강원도청 본관 로비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산불 원인 발언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고성·속초 한전 발화 산불 피해 이재민 공동대책위원회’ 주민 50여 명은 이날 오전 도청 1층 로비에서 최 지사의 면담과 사죄를 촉구했다. 주민들은 ‘강원도지사, 고성 산불 망언 사죄하라’는 플래카드와 ‘허위사실 유포 형사고발 각오하라’, ‘우리가 뽑은 도지사냐, 한전 대변인이냐’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최 지사가 지역방송의 한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20일 방송된 프로그램의 ‘예스, 노’ 문답에서 최 지사는 ‘이번 동해안 산불은 모두 확실한 인재다’라는 질문에 ‘노’라고 답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발표된 만큼 산불 책임이 명확히 한전에 있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18일 “국과수의 감식 결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특고압 전선이 절단된 후 전신주와 접촉해 아크(전기적 방전으로 인한 불꽃 현상) 불티가 발생하면서 주변의 마른 낙엽과 풀 등에 붙어 불이 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한전 관계자들을 상대로 전신주 설치 및 관리 과실 여부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최 지사는 이날 항의 방문한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과를 원하시면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해안 산불로 피해 주민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또 산불 원인을 제공한 한전을 상대로 주민 대신 소송을 벌일 준비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인재가 분명하다고 선을 그을 경우 국가 책임은 사라진다. 원인 미상 자연재해의 경우 일정 부분 국가 책임이 뒤따르게 돼 있다. 정부와 한전에 공동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 인재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공동대책위 관계자는 “피해 주민들이 한전과 정부를 상대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지사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한전 보상이 없으면 이재민들은 거리에 나앉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4일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속초 도심까지 번지면서 산림 700ha가 타는 등 피해가 컸다. 또 18일 0시까지 고성과 속초에서 주택 547채가 불에 탔고, 이재민 1139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