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로 나눠 성냥산업 탄생과정 소개, 근대 한국사회의 생활상 보여줘
인천 동구 금곡동 옛 동인천우체국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달 문을 연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위 사진). 한 여성이 1950∼1970년대 전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상표의 성냥을 보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황을 바른 작은 나뭇개비인데 마찰시키면 불이 붙는 거야. 케이크 사면 초하고 같이 주는 거 봤지? 그게 성냥이야.”
주부 김연미 씨(40)는 19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인천 동구 금곡동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을 찾았다. 태어나서 성냥갑을 본 적이 없는 아들은 성냥마을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성냥을 보고는 마냥 신기해했다.
성냥마을박물관 자리는 1917년 10월 설립한 국내 첫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가 있던 곳이다. 회사 이름에 들어 있는 인촌은 과거 성냥을 일컫던 말로 도깨비불을 뜻한다. 인천 향토사학자들은 불을 얻기 힘들던 때에 한번 긋기만 하면 불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만든 말로 추정한다.
지상 2층 규모(연면적 213m²)의 아담한 건물인 성냥마을박물관 전시는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조선인촌주식회사의 탄생과정을 소개한다. 구한말 신문물로 수입된 성냥을 만들기 위해 신의주에 제재소를 두고 나무를 조달해 성냥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선인촌주식회사는 조선표 쌍원표 삼원표 등의 이름을 붙여 성냥을 만들다가 6·25전쟁을 거치면서 문을 닫게 된다. 성냥을 만들던 기술자와 기계 등이 공장 주변에 보급돼 대한성냥 한양성냥 고려성냥 등이 잇따라 설립된다. 이후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성냥공장이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해서 1950∼1970년대 전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성냥을 볼 수 있다.
2부는 성냥 제조과정이다. 원목을 가늘게 잘라 만든 나뭇개비 끝에 인이나 염소산칼륨 같은 발화연소제를 발라 성냥을 만든다. 성냥갑 표면에 유리가루와 규조토를 섞어 만든 마찰제를 바른다. 성냥공장에서 일하거나 부업으로 성냥갑을 붙이고 포장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배다리마을 주민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성냥마을박물관을 관람한 뒤에는 TV 인기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인 헌책방거리와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를 둘러봐도 좋다. 1900년 경인철도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만조 때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고 불렸던 동네 역사도 확인할 수 있다. 김 씨는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 문물이 퍼지는 길목이던 배다리에서 성냥의 탄생과 생활상 변화를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