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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급박한 위험’ 기준 모호… 사고 관련없는 공장도 작업중단

입력 | 2019-04-23 03:00:00

재계, 산안법 시행령에 우려 목소리
‘구체적 기준 명시’ 요청 반영안돼
기업 해지 요청땐 4일이내 검토, 주말-휴일은 심의기간에서 제외
화학 등 24시간 가동 업계 긴장
“안전사고 예방 중요하지만 기업 제재 수단 악용될까 걱정”




“기업이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번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자칫 공장 가동이 너무 오래 중단될 수 있고, 사고 현장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공장도 중단될 수 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1분 1초가 급박한데 모호한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게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자 재계는 세부 규정이 여전히 모호해 산업계에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계를 대변해 고용부와 협의에 나섰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2일 “산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아 사업주의 우려가 크다”고 반발했다.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대 재해 발생 시 사업장의 작업을 중지하거나 중지를 해지하게 한 규정과 시행령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개정된 산안법에 따르면 중대 재해가 발생한 뒤 다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고용부 장관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경영계는 그동안 ‘급박한 위험’이 뭔지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시행령에 구체화되지 않았다. 경영계는 고용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고 발생 원인이 근로자 과실일 수도 있는데 원인과 상관없이 사업장 내 모든 작업이 중지될 수 있는 것은 기업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업중지 명령의 범위도 문제다. 산업재해에 대해 원도급 업자는 사업장 내 모든 장소를 책임지도록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에 실제 재해가 일어난 공장만이 아니라 재해가 없었던 제2, 제3의 공장까지 중지될 수 있다.

산안법이 개정되기 전에도 고용부의 지침에 따라 작업중지 명령이 확대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난해 2월 한 조선업체에서 도급업체 직원이 발판 해체 작업 도중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선박사업본부 전체에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따라 독에서 건조하던 4개 선박에서 일시에 일손을 놓아야 했다. 2017년 10월에도 한 타이어 업체에서 컨베이어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사고가 난 3공장뿐만 아니라 1, 2공장과 타이어를 쌓아두는 물류공장까지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고용부 지침만으로도 작업중지 명령이 확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법으로 규정되면 작업중지 명령 확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작업중지 명령을 해지할 때 근로자의 의견을 듣도록 했지만, 몇 명으로부터 어떤 근로자한테 의견을 받아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것도 노사 간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또 재계에서는 작업중지와 마찬가지로 원인이 파악되면 바로 중지 해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요구했지만 ‘4일 이내에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검토해야 한다’는 정부안을 그대로 확정했다. 경총은 “주말·휴일은 4일 기간에 제외한 것은 행정 편의만 고려한 것으로 주말과 연휴가 끼면 최소 6일 이상 공장을 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시행령이 입법예고되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화학 등 365일 24시간 공정이 돌아가야 하는 산업계의 걱정이 크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정전 사고로 약 30분간 작업이 중단됐을 때 발생한 손실은 약 500억 원이었다. 화학업계는 작업중지 기간의 매출 손실도 크지만 일단 중단된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남은 연료를 다 태워야 하기 때문에 최소 수백억 원의 비용이 든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규제를 하더라도 실효성 있고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규제를 해야 한다”며 “지금 산안법은 오히려 범법자를 양성하는 등 기업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으로 기업에 비용만 증가시킬 뿐 산업재해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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