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안인득에게 2년간 괴롭힘을 당해온 윗집 506호는 지난달 폐쇄회로(CC)TV를 달았다. CCTV에 열아홉 살 최모 양이 뒤쫓아 오는 안인득을 피해 다급히 506호로 들어가는 장면이 찍혀 있다. 최 양은 시각장애인이다. 그 긴박한 순간에 자기 집을 찾아 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때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에 나가 금메달 2개를 딴 적도 있다. 사회복지사가 꿈이었던 이 여고생 역시 안인득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정신질환자인 안인득은 다른 약자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오랜 항암치료를 마치고 초등학교 안전지킴이 일을 하며 회복 중이던 74세 남성, 혼자 식당일을 해 남매를 키운 59세 여성, 그런 엄마를 위해 대입을 포기하고 스무 살에 경리로 취직해 퇴근하면 엄마 식당일을 돕던 32세 딸이 희생됐다. 이번 진주 방화·살인사건과 유사한 2008년 서울 논현동 고시원 사건 때도 조현병 환자 정모 씨는 약자에게 흉기를 겨눴다. 중국동포인 식당 아줌마 3명 등 ‘단칸방 서민’ 6명이 숨졌다. 2012년 강남역 살인사건에선 무고한 23세 여성이 희생됐다.
정신질환자 범죄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책임마저 온전히 묻지 못한다. 어디다 대고 원망해야 할지 막막하다. 가해자는 심신미약 감경을 받지만 피해자는 형편이 어려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없다. 지금처럼 정신질환자 범죄가 방치되면 정신질환자들은 책임질 수 없는 책임으로, 다른 약자들은 회복될 수 없는 피해로 내몰린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수위를 정하는 일은 그들의 인권과 다른 사회적 약자의 생명권을 절충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정신병력 정보가 적절히 공유되고 필요하면 강제입원도 가능해야 하지만 지나칠 경우 환자들이 음지로 숨어 치료 공백이 더 커질 수 있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마음 아픈 분들이 편견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뜻을 남겼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의 범죄로 울분을 안고 사는 피해자들이 계속 나온다면 그들에게 편견을 갖지 말자는 고인의 뜻을 제대로 기리기 어렵다. 정신질환자들과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약자에게 집중되는 비극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