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은 신속하게 비핵화의 결단을 내렸다. 핵 대신 경제 발전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소련이 카자흐스탄 땅에서 450회 이상 실시한 핵·수소폭탄 실험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비핵화 열망도 감안됐다. 이후 핵무기는 러시아에 넘겨서 폐기 절차를 밟았고, 그 대가로 미국은 ‘넌-루거 프로그램’을 통해 16억 달러 규모의 경제 지원을 했다. 이후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비핵지대화 창설을 주도하면서 경제 부흥에 성공했다. 그래서 비핵화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국빈 방문 중인 카자흐스탄을 ‘모범적인 비핵화 국가’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창하는 ‘리비아 모델’에 선을 그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리비아는 핵물질을 2004년에 미국에 넘겼고, 경제 지원 등 보상은 이보다 2년 뒤에 이뤄졌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에 제안한 비핵화 완료와 동시에 제재 해제 및 보상이 이뤄지는 ‘일괄타결’ 방식과 비슷하다.
▷카자흐스탄 비핵화를 주도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평소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고 말해 왔다. 카자흐스탄 모델을 토대로 ‘핵 대신 경제’ 비전을 설명하겠다는 얘기다. 김일성부터 3대에 걸쳐 가까스로 ‘핵보검’을 거머쥔 김정은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