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미래다]<7> 식약처, 농약관리제 전면 시행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유해물질분석과의 한 연구원이 수입농산물의 잔류 농약을 검사하는 모습. 용인=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 씨가 비닐하우스에 꿀벌을 들인 것은 몇 해 전이다. 그 전엔 호르몬제와 붓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꽃가루받이를 시켰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농약 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에 따라 호르몬제를 포함한 농약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지자 꿀벌을 활용한 자연친화적인 꽃가루받이 방식을 택했다.
이 씨는 해충을 잡기 위해 농약을 쓸 때도 혹여 PLS에 어긋날까 봐 농협이 무료로 배포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본다. 어떤 작물에 무슨 농약을 쳐야 하는지, 농약을 몇 배로 희석해 농작물의 어느 부위에 뿌려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를 어겼다가 허용치를 초과한 농약이 농산물에서 검출되면 당장 판매한 농산물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 씨는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많이 쓰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니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0.01ppm은 농산물 1kg에 잔류 농약 0.01mg을 뜻하는 극미량이다. 쌀에 비유하면 80kg짜리 25가마니 중 쌀알 1개에, 화물로 따지면 1t 트럭 100대에 실은 물품 중 1g에 해당한다. 사실상 등록되지 않은 농약은 사용 금지라고 볼 수 있다.
식약처는 2016년 12월 밤 아몬드 등 견과류와 참깨 등 유지종실류, 바나나 등 열대과일류에 우선 PLS를 적용했다. 올해 1월 이후엔 모든 농산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농약 사용을 이처럼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는 농약의 화학성분이 토양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막고, 궁극적으로는 먹거리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농약의 화학성분은 당장은 해충을 쫓거나 잡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정량 이상 쓰면 농산물에 그대로 남아 인체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등 독성으로 작용한다. 농약 성분이 토양 내 유기물을 소멸시켜 땅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농약이 오염시킨 토양 환경은 다시 깨끗해지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2017년 8월 ‘살충제 잔류 계란’ 파동 땐 살충제를 쓴 적이 없다는 산란계 농장 2곳의 계란에서 금지물질인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이 기준치보다 많이 나왔다. 국내에서 1979년 이후 DDT 판매가 금지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40년 전에 뿌린 DDT 성분이 다 분해되지 않은 채 토양에 남아 있다가 산란계의 모이를 오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PLS는 우리 세대의 먹거리 안전뿐 아니라 미래의 환경을 고려한 제도인 셈이다.
“농산물 안심하고 구입하세요” 경기 용인시 포곡농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매장’에 이 지역 농민들이 직접 기른 쪽파 등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이 매장에서는 ‘농약 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를 철저히 지킨 농가의 농산물만 판매하는 데다 검사 결과표까지 공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용인=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용인시 포곡농협은 매주 관내 농산물 10건을 무작위로 수거해 농약 잔류검사를 하고 있다. 농민 김교진 씨(80)는 “지금은 무작위 검사에 걸릴까 봐 다들 농약 사용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라며 “애초에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농산물’이라고 생각해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선 농협의 농약 사용 교육을 3차까지 이수하고 현장 검사를 통과하면 농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할 자격을 얻는다. 12일 포곡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매장에 진열된 상추와 오이 등 농산물엔 농장주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 연락처뿐 아니라 잔류농약 정밀 검사표가 일일이 부착돼 있었다. 소비자 최순경 씨(56·여)는 “농약검사가 철저히 이뤄지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안심하고 구입한다”며 만족해했다.
이 때문에 PLS를 반기는 농민이 적지 않다. 예전엔 농약을 적절한 수준으로만 치고 싶어도 정확한 양을 몰라 무분별하게 사용했는데 PLS 도입과 함께 교육이 강화된 후 농약을 사는 데 쓰는 비용 자체가 줄기도 했다. 또 로컬푸드매장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어 농가들의 매출도 늘었다. 김미희 용인시 농업기술센터 북부농업기술상담소장은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민들은 도매시장에 팔 때보다 수입이 평균 1.3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