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등장한 반대 리더십… 측근 관리 실패하면 역풍 맞는다
김영식 국제부장
21일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대선 캠프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때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 그가 선거운동 기간에 주창한 강력한 반(反)부패, 이를 위한 기성 정치권과의 단절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에서도 최근 국제사회의 선거에서 두드러진 신인 정치인 강세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특징이 드러난다. 이른바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들이 정치적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다. 3월 말 슬로바키아 대선에서 당선된 주자나 차푸토바는 공직 경험이 하나도 없는 환경운동가 출신이다. 14일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선 집권 중도우파 중도당이 4위로 추락하고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이 세를 얻는 역전극도 벌어졌다.
젤렌스키의 선거 운동 자체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정치 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굳이 정치와의 상징적인 연결고리를 애써 찾아본다면, 2015년부터 방영된 TV 드라마 ‘인민의 봉사자’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교사 역할을 맡았다는 게 유일할 정도이니 말이다.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국민 앞에 놓인 선택지는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냐, 친서방 노선을 주창하며 경제 전문가를 자처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냐의 두 가지였다. 포로셴코는 온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경제 성장을 약속했지만, 국민은 부패한 정권에 등을 돌렸다. 젤렌스키는 그럴듯한 정책이나 공약도 내세우지 못했고 제대로 된 언론 인터뷰나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민은 빈곤율 30.3%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고, 지난해 국제투명성 조사에서 세계 120위로 가장 부패가 심한 나라의 멍에를 안긴 지도부를 용서하지 않았다(유럽 싱크탱크 ECPR 분석).
부패한 정권에 등 돌린 민심 얘기는 왠지 낯설지가 않다. “지금처럼 잘못하면 무조건 안 된다”는 외침은 우리도 이미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대선의 상징성에 눈길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젤렌스키가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지만 5년 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동부 지역의 내전, 돌파구를 쉽게 찾기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은 험로를 예고한다. 깨끗한 이미지로 당선된 젤렌스키조차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언론은 젤렌스키의 사업 파트너로 대선 승리에 기여한 유대계 신흥 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와의 결탁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했던 최대 은행 프리바트는 2016년 국유화 과정에서 세금 7조 원을 집어삼켰다. 이젠 그가 보상을 원하기 시작했다. 젤렌스키가 측근인 신흥 재벌 친구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가 향후 임기 5년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이 점에서 해외 언론의 생각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측근 관리에 실패하면 반대를 위한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현실은 저 멀리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