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강모 씨 소유의 불법 가라오케 내부. 독자 제공
김정훈 사회부 기자
22일 새벽, 전화기 너머로 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E가라오케 종업원이었다. 기자가 손님으로 가장해 “버닝썬, 아레나 사건 이후로 단속을 많이 한다던데 괜찮으냐”며 예약 문의를 하자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이 종업원은 “이 정도도 (처리) 못하면 이 바닥에서 일 못하죠. 걱정 말고 오실 때 전화주세요”라고 했다.
E가라오케는 강남 클럽 ‘아레나’ 실소유주 강모 씨(46·구속)가 소유한 업소 중 하나다. 이 가라오케는 구청에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해 놓고 실제로는 단란·유흥주점으로 불법 영업을 한다. 세금을 절반 이하로 줄이려는 전형적인 탈세 수법이다. 기자는 강남구 논현동의 H가라오케, 신사동 M가라오케에도 같은 문의를 했다. 모두 강 씨 소유의 업소로 역시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단란·유흥주점으로 장사를 한다. 종업원들은 한결같이 “걱정 말고 오라”는 반응이었다. 강남 유흥업계 관계자는 “강 씨가 운영하는 업소는 구청에 신고를 해도 별 탈이 없다. 강 씨 업소를 신고했다 보복 신고를 당해 곤욕을 치르는 업주들은 많다”고 전했다.
최근 본보는 H, E, M가라오케의 불법 영업 실태를 잇달아 보도했다. 그런데도 강남구는 이들 업소에 대해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불법 영업을 하는 현장을 확인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강남구의 담당 직원은 “우리 과에서 관리하는 업소가 1만6000곳이다. 7명의 인력으로 그 많은 곳을 단속할 수는 없다”며 “신고 민원이 들어오는 곳만 나가 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직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흥업소와 단속 공무원들 간의 유착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많다. 하지만 강남구는 이 같은 여론에도 둔감한 듯하다. 강남구의 한 과장급 직원은 경찰이 최근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한 전직 강남구 공무원에 대해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경찰이 잘못 짚은 것 같다”며 감싸는 듯한 말을 했다. 강남구는 별다른 내부 감찰도 벌이지 않고 있다.
강남구가 뒷짐을 진 사이 불법 영업을 하는 강 씨 소유의 가라오케는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전망이 좋은 가라오케’ ‘노래방 무제한 서비스’ ‘DJ 쇼 제공’ 등의 문구가 담긴 온라인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강 씨 소유의 가라오케 종업원들이 전화기 너머에서 보였던 당당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김정훈 사회부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