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고 존폐논란 뜨거운 전주 가보니 “자사고 없애면 교육 좋아지나요” 학생들, 대통령에 손편지 쓰기로 학부모들은 교육청 앞서 피켓 시위… 교사 “아이들 터전 지켜주고 싶어” 설립자 “명예-보람 물거품 되나”… 주민들, 지역명물 사라질까 걱정 교육감은 잇단 면담요청 묵묵부답
2학년 학생들이 영어수업 자료를 나눠 보며 토론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없다”고 하자 한 학생으로부터 “재미있다”란 답이 돌아왔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우경임 논설위원
□1 학생 “왜 우리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나”
봄기운을 품은 상산고 교정을 삼삼오오 거니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학생들은 상산고 진학을 목표로 중학교 내내 준비를 했다고 한다. 김정윤 군(3학년)과 조채은 양(2학년)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이대훈 군(3학년)과 강지호 군(2학년)은 수학에 특화된 교육을 기대하고 왔다. 학원에 가지 않고도 밤낮으로 선생님과 토론하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강 군은 “상산고가 아니더라도 더 나은 교육환경을 갖춘 학교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했다.
상산고 학생회는 학생 투표를 통해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쓰기로 했다. 학생회장인 김 군은 “선생님과 부모님은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하셨지만…. 자사고 평가가 법에 어긋나고 불합리해서 꼭 알려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첫 줄에 ‘상산고에서 행복한 재학생 조채은입니다’라고 쓸래요.”(조 양)
“결과가 정의롭다 해도 절차가 공정하지 않다면 민주적이지 않습니다.”(김 군)
‘공부할 기회를 빼앗지 말라’고 하는 공부가 재능인 남다른 아이들도 있다. 노래가 재능이고, 요리가 재능이듯이. 아이들은 단 하나의 다른 학교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2 학부모 “자사고가 일반고를 붕괴시켰나”
2일 전북 전주시 상산고 학부모들이 전북도교육청 앞에서 ‘상산고를 지켜달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부모들은 두 달 넘게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계숙 씨 제공
“아이가 ‘서울 있었으면 매일 학원 다니고 전교 ○등 경쟁만 했겠지’라고 해요. 여기선 서로 격려하고, 자극을 준다고요.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를 시행령 하나 뚝딱 만들어서 ‘우리를 따르라’고 하니….”(조윤경 씨·서울)
“아이가 중1부터 상산고 간다고 해서 3년간 고민하고, 준비해서 진학했어요. 정권이 바뀐다고 학생들 꿈도 바뀌어야 하나요. 이건 학생인권으로서 존중받아야 해요.”(김혜수 씨·전북 정읍)
“각 시도교육청 일반고 지원정책을 일일이 조사해 봤어요. 전북도교육청이 그동안 일반고를 위해 뭘 했는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자사고가 없어지면 다 해결되나요? 하향평준화되는 것 아닌가요?”(강계숙 씨·전북 군산)
□3 교사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올해 전북도교육청이 평가하는 자사고는 단 한 곳, 상산고뿐이다. 지난해 12월 자사고 재지정 평가계획을 받았다. 기준점수를 다른 시도보다 10점 높은 80점으로 올렸다. 그동안 의무선발이 아니었던 사회통합전형 관련 배점은 크게 높인 대신 학교 구성원의 만족도 관련 배점은 낮췄다. 박 교장은 “아무리 성적 좋은 학생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예고 없이 커트라인까지 높인 셈”이라고 말했다. 자사고에 들이대는 이 같은 엄격한 잣대는 진보교육 브랜드인 혁신학교 재지정 평가 탈락률(1.2%)과도 비교된다.
“우리 교사들 보통 오전 7시 반 출근, 오후 6시 퇴근합니다. 야간 특강도 합니다. 수능이 목표가 아니라 고급영어, 고급수학 배워 세계와 겨루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에요. 열심히 가르치면 특권학교, 학원 안 가고 기숙사 생활하면 귀족학교라니요.”
교육 수요자의 관점에서는 교사나 수업의 질이 중요하다. 이와는 거리가 먼 평가기준으로 좋은 학교를 선별할 수 있을까.
□4 설립자 “국가의 약속이란 무엇인가”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을 만난 11일은 마침 자사고 동시선발·중복지원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던 날이었다. 자사고-일반고 중복지원 금지는 위헌, 후기 동시선발은 합헌 결정이 난 순간, 그는 펜을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흙수저’였던 홍 이사장의 쓰라린 고학의 산물이 ‘수학의 정석’이다. 1981년 이 수익금으로 고향인 전북에 학교를 세웠다. 2002년 김대중 정부가 평준화 틀 안에서 획일성을 보완하고자 자립형사립고를 도입할 당시 자사고로 전환됐다. 사학들은 매년 학생 납입금 총액의 25%를 학교법인이 반드시 부담하도록 한 조항 때문에 이를 외면했지만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고 싶어 호응했다고 한다.
“학생선발권과 교과과정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재산과 열정을 쏟았는데, 이처럼 신뢰를 저버린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교육을 하겠어요.”
작은 소나무를 사다 직접 기르고, 비단잉어 치어를 사다 키웠다. 집처럼 편히 지내라고 9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는 방마다 샤워실을 만들었다. 이런 쾌적한 환경이 적폐가 된 이유 중 하나다.
“사학을 하며 남는 건 명예와 보람뿐인데 물거품이 됐어요. 세금 안 쓰고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겠다는데 국가는 하지 말라 하고, 나는 하겠다고 하고… 이상한 세상 산다 싶어요.”
한 학부모의 전언이다. “홍 이사장이 ‘내 고향 살리고 싶어 정치권 손짓도 뿌리치고 교육에 전념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정치를 할걸’ 그랬다고.”
□5 지역사회 “지역의 자랑을 왜 없애나”
“멀쩡한 학교를 왜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 사람들 교육감이 무슨 욕심이냐고 한다.” 상산고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가 전한 지역 여론이다.
상산고의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연간 200억 원이란 분석이 있을 정도로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학교 앞 호남마트를 24년째 운영하는 이인자 씨는 “학생 만나러 온 학부모들이 한옥마을 구경하고, 졸업생들은 대학 친구들을 데려와 전주를 소개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인근 아파트 전·월세 시세도 다른 곳보다 다소 높게 형성돼 있다.
김 교육감은 이런 여론에 대해 아예 귀를 닫고 있다. 학부모와 동문들이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면담도 줄곧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국회의원 도지사까지 나서 ‘다른 시도와 형평성을 맞춰 달라’고 했지만 김 교육감은 강행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유재희 상산고 동창회장은 “아무리 신념이더라도 반대 의견이 있으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상산고 없어지면 전주 인재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필자가 상산고 교정에서, 전주에서 만난 이들의 말은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상산고가, 자사고가 없어지면 우리 교육이 정말 좋아지는 겁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김 교육감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변인실과 비서실은 “김 교육감이 관련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는다. 자사고에 대한 원칙은 이미 밝혔다”고 했다. 그가 1월 신년회견서 밝힌 원칙은 “자사고 폐지는 대통령 공약이고, 전북도교육청은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 6월 자사고 24곳의 평가결과가 나오고, 7월 존폐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