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시작으로 우리 곁에 온 인공지능 암 수술-범죄수사-번역 등 확장성 무한 단순 기술 넘어 물리학 같은 학문 반열에 美 MIT, 1조 원 쏟아부어 단과대 설립 후발주자 한국, 이제라도 치밀히 준비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2016년에 등장한 알파고로 인해 우리에게 AI란 바둑과 같이 대단히 복잡한 게임도 세계 최고의 프로기사보다 훨씬 더 잘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사실 그런 AI는 우리 삶과는 별로 관계없는 일로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알파고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필수품이 된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생각하면 AI에 의한 혁명적인 삶의 변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편한 길을 어떤 순간에도 차질 없이 알려주는 AI에 우리는 갈림길 선택이라는 중요한 판단을 모두 위임했다.
운전석이 없는 완벽한 자율주행 자동차도 결국 실현되겠지만, 최근 부각되고 있는 고령운전에 기인한 문제는 AI의 도움으로 머지않아 상당히 해결될 것이다. 이러한 자율주행차나 각종 로봇도 AI지만 중국 경찰이 이미 사용하는 범죄 용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안경도 안면 인식 AI다. 그리고 사람의 대화를 그대로 받아 적는 목소리 인식도 AI며 이제는 실용 단계에 오른 외국어 번역도 AI다. 영상의학 분야에서 아주 미세한 암세포를 찾아내고 그 변화를 추적하는 일도 AI의 몫이다.
반면 AI는 모든 분야에서 ‘생각하는 기계를 추구’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현재의 AI는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씩 쉼 없이 학습하면서 아무리 사소한 것도 잊지 않는 절대적 기억력을 지닌다. 그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그야말로 빠르고 정확한데, 이런 능력만이라도 당연히 모든 일에 큰 도움이 되고 또 혁신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제는 AI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미래의 인류는 결국 이러한 ‘생각하는 기계’와 공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20세기에 들면서 자동차가 등장했고 문명국의 시민 모두가 결국 운전을 필수로 삼게 된 것처럼, 이제 21세기는 모두가 AI를 다루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물리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에 국한하지만 AI는 자연 및 인문사회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앞으로 AI와 함께 일하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는 훨씬 정교한 현상분석에 기초해 더욱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AI에 의해 인간은 결국 존엄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인간이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고 아름다운 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AI가 인류사회에 가져올 그림자에 대해서도 여러 측면에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대학 중 하나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9월 무려 1조1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AI 단과대학을 새로 출범시킨다. 대학이 길러내는 각 분야의 모든 인재에게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대학의 인문사회예술대 학장인 노블 교수는 “인문학이 더욱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AI와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우리 정부는 AI 인재 양성을 위해 3개 대학을 선정하고 각 30억 원을 지원했다. 미흡한 지원에 아쉬움이 짙었는데, 그래도 대덕전자의 김정식 명예회장이 AI 교육을 위해 서울대에 500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인쇄회로 기판에서 대한민국이 지닌 높은 기술력은 김 회장의 삶 자체다. 구십 평생 힘들여 쌓은 재물을 인재 양성에 희사하고, 11일 영면한 원로 기업인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런 격려가 있으니 우리는 AI와 함께할 미래를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