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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선점 日-물량공세 中 맞서… 한국, 신뢰 마케팅으로 뚫는다

입력 | 2019-04-25 03:00:00

[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 / New 아세안 실크로드]
<7> ‘아세안 시장’ 한중일 新삼국지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야웅니핀 지역에는 한국과 미얀마가 최초로 공동 조성할 예정인 경제협력산업단지 용지가 있다. 이 산단은 최근에야 미얀마 정부의 조성 허가를 받았으며 조만간 착공과 함께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입주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보다 앞선 2015년 양곤 남동쪽 10km에 ‘틸라와 산업단지’를 완공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미국, 중국 등의 기업, 금융회사, 공장 약 90곳이 입주해 있다. 중국은 인도양으로 향한 항구 시트웨와 북부 국경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얀마 북부 접경도시 뮤즈는 중국과의 교역을 바탕으로 미얀마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미얀마에 나타난 한국과 중국, 일본의 행보는 세 나라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 빠르게 아세안 시장을 선점한 일본과 물량 공세를 강화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이제야 경쟁에 뛰어들어 한발 뒤처진 형국이다.

○ 아세안 시장서 벌어지는 한중일 삼국지

아세안과 유엔에 따르면 2017년 아세안에 투자된 해외직접투자(FDI)는 1370억 달러(약 158조 원). 이 중 아세안 회원국의 역내 투자를 제외하면 일본이 132억 달러로 가장 많다. 중국은 113억 달러로 뒤를 잇고 있으며 홍콩의 투자금(78억 달러)까지 더하면 일본을 뛰어넘는다. 반면 한국은 53억 달러로 7위에 그친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아세안에 공장을 세우면서 시장 확대에 나섰으며 2012년부터는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차이나 플러스 원’ 정책을 바탕으로 아세안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해외 인프라 건설 투자 프로젝트) 정책에 따라 아세안 국가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김휘진 신한베트남은행 본부장은 “일본 업체와 금융사들은 현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오랜 관계를 통해 큰 이익을 얻고 있다. 중국 금융사는 투자 규모가 워낙 커 별다른 전략 없이도 성장이 빠르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아세안 시장 진출을 위한 신남방정책을 지난해에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한국 기업들은 현지 시장 개척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견제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캄보디아에 만들어주기로 한 국가 지급결제 시스템 구축 사업의 경우 2014년 양국 간 협약 이후 약 3년간 본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 사업 실무를 맡았던 전직 공무원 A 씨는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2017년 한국의 자금 지원이 최종 결정되기 전까지 캄보디아 정부와 중앙은행에 접근해 사업 중단 가능성을 체크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하종원 캄보디아증권거래소 부이사장은 “일본이 한국의 금융 인프라 지원 사업을 벤치마킹해 미얀마와 라오스에 국가 지급결제 시스템, 미얀마에 증권거래소 구축에 나설 것이란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 중국 일본 주춤한 틈 노려야… 신뢰 확보 절실


다만 최근 중국과 일본의 아세안 진출이 주춤거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은 ‘차이나 플러스 원’ 정책 이후 중국의 아세안 진출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태국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수준으로 아세안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대규모 차관을 받았던 스리랑카, 파키스탄 도시가 빚더미에 앉았다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현지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동부 해안철도 사업을 중단시켰고, 태국과 라오스도 중국과 합작한 고속철도 건설을 늦추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외국계 금융 플랫폼 확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는 중국계 은행이 시장을 침략한다고 여기고 있다”면서 “현지인에게 호감을 주는 이미지 구축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세안 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아세안 드림’의 성공을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자산운용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싱가포르에서 연이어 철수해 현지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나기도 했다. 한국 은행의 한 캄보디아 법인장은 “캄보디아 당국자 중에는 한국에 대해 신도시 캄코시티와 프놈펜 최고층 골드타워 건설을 중단했던 나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빨라지면서 국가별, 지역별 특성이 뚜렷해지는 만큼 각국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전략’도 필요하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의 서정인 단장은 “국가별로 금융 수요가 제각각 다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총괄본부를 세워 시장을 분석하거나 도움을 줄 현지 인맥을 장기간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곤·프놈펜=이건혁 gun@donga.com / 하노이·호찌민=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