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처음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사실상 ‘비핵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하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그 방식으로 기존 6자 회담 체제의 복원까지 주장했다. 지금까지 북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비핵화 협상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참여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를 곧 미중에 전하겠다고 밝힌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키가 될 듯 하다.
● 푸틴, “힘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며 개입 공식화
김 위원장은 이날 정상회담, 확대회담을 통해 5시간 가량 푸틴 대통령과 비핵화 등 현안들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연회에서 “지역의 평화 안전 보장을 위한 문제들 그리고 공동의 국제적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이고 전통적인 조러(북러) 친선 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며 전략적 방침”이라고 밝혔다. 집권 후 첫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압박을 피하면서 비핵화 논의의 또 다른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보겠다는 것. 이에 푸틴 대통령은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북한 속담을 인용하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를 통해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6자 회담은 2005년 북한 비핵화 원칙·목표를 담은 ‘9·19 공동성명’과 관련 후속 합의들을 도출하기도 했지만, 북미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검증·시찰 방법을 두고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협상 프로세스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비핵화 중재자’를 요청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직접 북한 측의 입장을 미국 행정부와 다른 정상들에게 알릴 것을 희망했다”면서 “내일(26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얘기할 것이고 미국 행정부에도 오늘 회담 결과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12일 시정 연설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 하지 말라”고 했던 김 위원장이 중재자 바통을 푸틴 대통령에게 넘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6자 회담’은 북의 또 다른 판 흔들기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다자논의 해법 구상을 푸틴 대통령에게 밝혔는지는 불분명하다. 비핵화 판도에 개입하려는 러시아의 의지가 섞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자논의가 되면 비핵화 협상 타결이 시간이 결려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는 더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김 위원장도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며 ‘톱다운식 해결’을 선호해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미국의 ‘빅딜’ 기조를 두 달 가까이 유지하자 북-러 정상회담, 6자 회담 카드를 흔들며 틈을 노리는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회견 전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핵 6자 회담 재개 가능성에 대해 “현재의 톱다운 방식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블라디보스토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