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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부른 高환율… 시름 깊어가는 한국경제

입력 | 2019-04-26 03:00:00

‘-0.3%’ 역성장 쇼크
달러당 1160원 27개월 만에 최고… 기업 어닝쇼크 등 내부요인 더 커
수출 경쟁력 향상 기대 힘들고, 되레 수입 물가만 들썩일 우려
이란 제재 따른 유가 강세도 부담




한국 경제가 1분기(1∼3월)에 마이너스(―) 성장한 충격이 외환시장을 덮치며 원-달러 환율이 2년 3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미국 달러화 강세가 여전하고 당장 한국 경제의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이 같은 원화 가치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출기업이 원화로 받는 돈이 늘어 수익성도 개선된다. 외국인투자가가 한국에 달러를 투자할 유인도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원-달러 환율 급등세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이어서 수출 경쟁력 제고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제유가와 달러 가치가 동시에 오르면서 수입 물가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 역성장 충격에 원화 가치 곤두박질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6원(0.83%) 오르며 달러당 1160.5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160원 선을 넘은 건 2017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은 22일부터 4거래일 연속으로 올랐으며 이 기간 동안 23.6원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른 건 일단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고용과 소매 판매 관련 지표가 시장 전망치보다 높게 나오자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고하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됐다. 이에 23일(현지 시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은 달러 가치 상승이라는 외부 요인과 함께 한국 경제 자체의 요인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상 4월은 외국인투자가에게 배당금을 보내는 시기라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시점이다. 최근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한국 채권의 비중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점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한국 주요 기업들의 1분기 성적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 잠정치가 전 분기보다 약 42% 줄어든 6조2000억 원에 그쳤다. SK하이닉스는 25일 1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70% 가까이 준 1조3665억 원이라고 공시했다. LG디스플레이는 적자를 냈고, LG화학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 ‘어닝쇼크’ 행진이 이어졌다.

○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계심 확산”

블룸버그와 SK증권에 따르면 이달 17일부터 24일 사이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1.6% 하락했다. 주요국 통화 중 원화보다 가치 하락률이 큰 건 호주 달러화, 터키 리라화 정도이며 일본 엔화는 오히려 올랐다. 여기에 이날 한국은행이 1분기 성장률을 ―0.3%로 발표하자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환율 상승 폭이 다른 통화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건 그만큼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계심이 확대돼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증대를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최근 수출이 부진했지만 원화 가치가 내려가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추후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급격한 환율 상승은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돼 있다. 기업들이 환율이 오른다고 적극적으로 판매 단가를 낮추기 곤란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을 제재하면서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이는 점도 부담이다. 원유는 달러화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만큼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