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악성 민원에 골머리 “불법광고 단속” “꽁초 치워달라”… 4명이 작년 2만1600건 제기 한밤-교대시간 등에 집중 신고… 처리 늦으면 욕설, 감사실에 항의 區, 특별관리대상으로 정하고… 민원처리 여부 직원평가 반영안해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공원인데 흡연하는 사람이 있어요. 단속 바랍니다.” “골목길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어요. 안 치우시나요.”
“또 그 사람이구나.”
매일 밤 강동구청 숙직자들은 쉴 새 없는 담배 관련 민원에 애를 먹는다. 하룻밤 수십 건씩 비슷한 민원을 넣는 사람은 30대 이모 씨다. 이 씨는 지난해 강동구에 7300건의 민원을 넣었다. 하루 평균 20건씩 민원한 셈이다. 강동구 관계자는 “이 씨가 ‘민원폭탄’을 넣은 지 2년 정도 됐다. 내용은 다양한데 최근에는 담배에 꽂혀 있다”고 전했다.
이러면 이 씨의 항의 전화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실무 담당자에게 “왜 처리 안 해주느냐”며 따진다. 뒤이어 담당 과장, 감사실에 항의하고 때로 욕설도 퍼붓는다. 강동구 공무원들에게 ‘세금충(세금을 축내는 벌레라는 뜻의 속어)’이라는 말도 반복했다. 듣다못해 감사실 직원이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내기에 그러시느냐”고 묻자 이 씨는 “국민을 무시한다”며 더 역정을 냈다.
강동구는 최근 이 씨 같은 ‘악성 민원인’ 4명을 지정하고 특별 조치에 돌입했다. 이 4명이 지난해 제기한 민원은 총 2만1600건으로 강동구 전체 민원의 약 30%다. 강동구는 이들에게 ‘당신의 민원은 바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고 고지할 예정이다. 또 이들의 민원 처리 여부와 그에 따른 불만 제기는 직원 평가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울시와 행안부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악성 민원인 4명 중에는 민원 건수에서 이 씨를 앞선 사람도 있다. 총 7400건을 제기한 50대 박모 씨는 주로 상점들이 문 앞에 내놓는 입간판이나 광고물을 단속하라는 민원을 넣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박 씨는 2년 전까지 광진구에서도 무차별 민원을 넣다가 주변 상인들의 항의를 받고 강동구로 이주했다.
과도한 민원 제기는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대표적인 민원은 불법 주정차다. 악성 민원인들은 차를 시급히 옮겨야 할 필요가 없는 주택가 골목에서 주민이 자신의 집 앞에 차를 세운 것까지 신고한다. 민원을 받았기 때문에 단속을 나가면 해당 주민들로부터 “단속 건수 채우려고 나왔느냐”는 항의를 받기 일쑤다.
이들은 공무원 업무 체계에도 밝아 이를 이용한다. 지난해 민원 1600건을 넣은 김모 씨는 숙직자들이 업무를 마치고 교대하는 오전 7시경 집중 신고한다. 업무 전달이 누락되거나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할 때면 김 씨는 “직무유기다. 징계하라”고 구에 요구하기도 한다. 강동구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담당자들은 저자세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민원인들은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