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낭(如意娘)’(무측천·武則天·624∼705)
감업사로 오기 전 측천은 이미 황태자 시절의 고종과 서로 연정을 맺은 사이였다. 따라서 이 시는 지난날의 연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연애편지였지만 측천으로서는 결코 단순한 연애편지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내민 절박한 호소문이라고나 할까. 황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냥 비구니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 야심만만한 측천으로서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움켜잡아야만 했다.
측천이 바친 이 시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 때문이었을까. 감업사에서 재회한 지 1년여 만에 황제의 부름을 받은 측천은 마침내 황궁으로 귀환했고, 그 후 황후를 거쳐 황제, 태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말하자면 측천은 태종 고종 두 황제의 아내였고, 고종을 뒤이은 중종과 예종 두 황제의 모친이기도 했으니 명실상부 불세출의 여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제 여의낭은 악곡의 명칭,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