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1992년 9월 8차례에 걸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군사분과위원회 북한 측 대표인 44세의 김영철 소장(73)은 우리 측 대표인 박용옥 준장에게 회담 내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잖아”라며 하대했다. 북한군 소장은 별 하나로 우리의 준장과 같지만, 용어 때문에 자신이 우리 군 소장급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영철이 네 살이나 더 많은 박 준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계속 건방을 떨자 1992년 5월 7차 회담을 앞두고 박 준장을 소장으로 승진시켰다. 김영철은 별 두 개를 달고 등장한 박 소장을 보고 머쓱해했다고 한다.
▷2016년 북한의 대미·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에 김영철이 임명됐을 때 당시 공식적인 북한 내 서열 2위는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지만 실제로는 김영철이 더 실세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영철은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의 보좌역을 하는 등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 밥투정을 할 때부터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초급장교 시절부터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는 등 한미 군사훈련, 주한미군 문제 등을 체득할 기회가 많았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정치군인에 불과하다. 북-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자리는 분에 넘친다. 나중에 숙청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천안함 폭침의 배후인 김영철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남 정치꾼인’으로 불릴 만큼 협상 중에도 도발 등 뒤통수를 치며 골탕 먹이는 데 능란했다. 천안함 폭침 문제를 다룬 2014년 10월 남북군사회담에 수석대표로 나타나는 뻔뻔함을 지녔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열차 여행을 또 해야 하냐”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김영철이 아직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원은 유지하고 있지만 해임을 넘어 숙청까지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