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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구특교]황하나 마약사건으로 눈물짓는 대리점주들

입력 | 2019-04-26 03:00:00



구특교 사회부 기자

“내가 마약하는 회사 우유를 왜 사 마셔야 돼?”

수도권의 한 남양유업 대리점 점주 A 씨는 며칠 전 고객한테서 전화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요즘 A 씨는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든다. 욕설 섞인 항의를 하며 우유를 끊겠다는 고객들의 전화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엔 하루 대여섯 가구와 계약했는데 ‘황하나 마약사건’ 이후로는 하루 한 집도 계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하나 씨(31·구속)의 마약 투약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애꿎게도 사건의 불똥은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한테로 튀었다. 황 씨가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고객이 불매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기자가 접촉한 대리점 10여 곳은 황 씨 사건 이후 매출이 15∼20% 줄었다고 했다.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진 곳도 있다.

불법을 일삼고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미스터피자’나 ‘호식이두마리치킨’의 경우처럼 사주가 폭행, 성추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으로 맞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황 씨 마약사건 이후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진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앞의 두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황 씨가 남양유업 창업주의 3세인 것은 맞다. 하지만 황 씨뿐 아니라 황 씨의 부모도 남양유업 경영에는 관여한 적이 없다. 회사 지분도 없다.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황 씨는 오너도 아니고 경영에 참여한 적도 없다”며 “지금 같은 식이면 사돈의 팔촌까지 따져 연결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피해는 애먼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유제품 산업에서는 고객이 한 번 등을 돌리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경쟁 회사 제품이 워낙 많아 언제든지 대체 상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씨의 마약 투약은 남양유업 회사나 임원이 관련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대리점주들이 배상을 받아내기도 어렵다. 기업이나 기업 임원의 위법행위로 가맹점 업주들이 손해를 볼 경우 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일명 오너리스크 방지법) 개정안이 올해부터 시행됐다.

“6년 전 ‘남양유업 갑질 논란’ 때도 타격이 컸지만 그때는 회사가 잘못했으니 참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관련도 없는 외손녀 때문에 피해를 보니 분통이 터집니다.” 2010년부터 경기도에서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해 온 한 점주는 기자에게 “억울하다” “답답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구특교 사회부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