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된 ‘자화상―나를 보다’,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靑田)·소정(小亭)’, 국립중앙박물관의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등이 그것이다. 다음 달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1’도 마찬가지다. 보기 드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라 나는 기꺼이 이들을 챙겨 보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달 21일까지 진행된 ‘자화상―나를 보다’ 전시회는 전시 마지막 날에 겨우 다녀올 수 있었다. 지난달 대학이 개강해 바쁘게 지내다보니 놓칠 뻔했는데, 만약 안 갔더라면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전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것이다. 의도가 분명하고 귀중한 작품들로 구성돼 설득력 있는 훌륭한 전시였다. 쉽게 다시 만나기 어려운 개인 소장품이 많이 전시됐다. 특히 원본이 최초로 공개된 만해 한용운의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시(諸位在獄中吟·제위재옥중음)’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감옥에 수감됐던 독립운동가들이 그곳에서 지었던 한시를 만해가 모아 옮겨 적어 놓은 것이다. 갈색으로 변색된, 쭉 펼쳐진 작은 종이에는 붓으로 쓴 만해의 꼬장꼬장한 느낌의 글들이 가득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조선총독의 암살을 계획했던 김상옥. 그 최후의 순간을 그린 구본웅의 작은 글과 그림을 보니 당시 상황이 실제로 상상되는 듯했다. 마음이 착잡해 한동안 멈춰 서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전시회에서는 안중식과 서화미술회를 중심으로 당대 한국화의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었다. 안중식의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서화, 사진, 삽화 등 100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하고 체계적인 구성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귀중한 자리다. 특히 관람객들을 상대로 체계적으로 준비된 도슨트의 훌륭한 해설과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제 막 시작한 전시라서 천천히 몇 번이고 공부하듯 다녀 볼 생각이다.
이 전시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은 안중식의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와 김은호의 ‘부감’ 초본이다. 백악춘효도는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암기했던 맹호연(孟浩然)의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로 시작하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시로 설명돼 있어 나라를 잃은 백성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일제에 의해 사라진 경복궁 내 건물들이 마치 봄의 달콤한 꿈처럼 그려져 있다. 부감 초본은 김은호의 1927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도록에 수록돼 있는 그림의 초본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일본 채색화 기법으로 완성된 일본색이 나는 출품작과 달리 서양화적인 구도와 묵으로 그려진 한국화적인 선의 담백한 맛을 자아내고 있다.
근대의 인물이나 작품들은 100년을 전후한 시간이 경과해 이제야 객관적인 연구와 평가가 시작될 시기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세상으로 나와 연구되는 계기가 이번 전시들을 통해 마련되기를, 또한 이런 전시로 연구자뿐 아니라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직접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흔히 사람들은 나를 일본 사람으로만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일본인이라고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한국이나 세계 어디에서든 일본과 관련된 작품을 접할 때도 그저 그 자체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감동하고, 추악한 현실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 이렇듯 특별한 의도를 지니고 전시와 작품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볼 생각이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