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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문명의 젖줄’ 실크로드 만든 힘은 돈과 종교”

입력 | 2019-04-27 03:00:0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 편 1·2/유홍준 지음/각 352쪽·1만8000원·창비




돈황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명사산 아랫자락으로 관광객을 태운 낙타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명사(鳴砂)’는 모래와 자갈이 바람에 굴러다니는 소리가 울음소리와 비슷해 붙은 이름. 실크로드 주요 관광지로, 관광용 낙타만 1000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창비 제공

“돈황과 실크로드는 저의 오랜 로망이었어요.”

“이것 좀 보세요. 사막이 주는 감동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2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 유홍준 명지대 석좌 교수(70)는 1시간 동안 준비해온 사진과 자료를 꺼내 보이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간담회가 아니라 여행가의 모험담을 듣는 자리 같았다.

‘나의 문화유산…’ 시리즈는 누적 판매 부수 400만 부를 넘긴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지금까지 국내 편 10권과 해외 편 4권(일본)이 나왔다. 중국 편은 7권에서 10권 사이를 목표로 한다. 이번에 펴낸 첫 2권은 돈황(敦煌)과 실크로드에서 출발했다.

“출발지를 신중히 정하는 편인데, 이번엔 선택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중국 5대 고도에서 시작하면 중화주의나 사대주의로 오해할 수 있고, 동북 3성을 쓰자니 애국주의 입장이 강조될 것 같았죠. 그러다가 동서양의 연결고리이자 여러 민족이 투쟁하며 문명을 쌓아올린 서쪽이 적당하겠다 싶었습니다.”

1권 부제는 ‘돈황과 하서주랑: 명사산 명불허전(鳴不虛傳)’이다. ‘사기’와 ‘삼국지’의 무대인 관중평원에서 시작해 하서주랑(河西走廊·황허 서쪽의 좁고 긴 평지)을 거쳐 돈황 명사산에 이르는 2000km를 답사했다. 실크로드 6000km 가운데 동쪽 3분의 1에 해당한다.

2권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은 막고굴과 그곳에서 발견된 돈황 문서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막고굴은 1.6km 길이의 절벽에 1000여 년 동안 승려 화가 석공들이 파놓은 크고 작은 석굴을 통칭한다. 외국인 도굴꾼과 이에 맞선 수호자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14시간 동안 버스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주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 옛날 이 무지막지한 길을 뚫은 힘은, 무역로를 놓은 ‘돈’과 불경을 구하러 가는 ‘종교’ 두 가지였구나….”

유 교수는 중국 편을 쓰면서 한국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중국과 우리의 문화유산 규모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며 “중국에 막고굴이 있다면 우리에겐 석굴암이 있다. 각자의 상황과 자연 속에서 그 나름의 문화유산이 형성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에도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권 속에서 상당한 지분을 지켜왔다. 한국은 당당한 문화 주주 국가”라고 덧붙였다.

유홍준 교수는 나머지 중국편에서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현장,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는 국경선 코스 등을 다룰 계획이다. 창비 제공

일흔에 접어들었지만 몸과 마음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는 “많이 걸어서 그런지 일흔이라고 자각해본 적은 없다. 52세 정도로 스스로 느낀다”며 “내년 봄 전에 투르판과 쿠차로 이어지는 3권을 출간할 것”이라고 했다.

“시리즈가 장수하는 비결요?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역사와 문화 자연 미술을 재미있게 풀어낸 점 아닐까요. 이번 책은 특히 사진과 용어설명 하나하나 친절하게 썼습니다. 크기는 기존 책의 90%에 무게도 가벼워졌죠. 충실한 가이드북이 됐으면 합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