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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현대철학 거장 4인의 소설같은 삶과 사랑

입력 | 2019-04-27 03:00:00

◇철학, 마법사의 시대/볼프람 아일렌베르거 지음·배명자 옮김/488쪽·2만 원·파우제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1920년대 유럽에서는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라는 천재 물리학자들이 등장했고, 문학에서는 토마스 만과 제임스 조이스가 새로운 길을 열었다. 동시에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4명의 걸출한 인물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아우라의 개념을 창시한 발터 베냐민(1892∼1940), 상징철학의 대가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 실존주의와 현상학을 혁신한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분석철학과 일상 언어철학 등을 대표하는 천재 철학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다.

이 책은 1920년대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철학자 4명의 삶을 조명한다. 1919년 세계대전 종전 뒤부터 독일 나치의 등장 이전인 1929년까지 10년간 그들의 주무대였던 파리, 베를린, 빈 등이 책의 배경이다.

저자는 전후 역동적이면서 급진적이었고, 혼돈의 시대였던 1920년대가 오히려 철학하기에 좋은 시기였다고 강조한다. 학교 교육은 부차적이었고, 학문적 명성 또한 땅에 떨어진 때였다. 덕분에 4명의 천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매달릴 수 있던 토양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으레 상상하는 골방 안에서 고민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책 속에서 찾긴 어렵다. 그 대신 유럽 곳곳으로 떠돌았던 베냐민의 유랑을 상세히 풀어내고,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철학의 신으로 추앙받다가 갑자기 스스로 빈털터리가 돼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던 억만장자의 아들 비트겐슈타인을 조명한다. 또 유대인으로서 독일 함부르크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점점 격해지는 독일인의 유대인 혐오를 직접 당해야 했던 카시러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해나 아렌트와 불타는 사랑을 펼친 하이데거의 일생과 천재 철학자로서의 성공담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