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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세계 최대 공룡화석 ‘수’는 어떻게 박물관에 오게 됐나

입력 | 2019-04-27 03:00:00

◇큐레이터:자연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랜스 그란데 지음·김새남 옮김/460쪽·3만8000원·소소의책




미국 학계에서는 화석을 사기업이 발굴해도 되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었고 티렉스 공룡 ‘수’ 소유권 분쟁은 그 기폭제가 됐다. 왼쪽은 국립공원에서 불법 발굴을 감시하는 단속반, 오른쪽은 ‘수’의 첫 발굴 모습. 소소의책 제공

흔히 ‘큐레이터’라고 하면 떠올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 기획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화석과 표본을 발굴, 채집하고 연구해 전시하는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들에 관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아주 오래된 과거를 탐구하는 사람들 일이라니 정적이고 고지식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특히 16년 동안 2500만 명가량 다녀간 박물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말이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큐레이터이자 저명한 학자. 필드박물관은 미 3대 자연사박물관으로 꼽히며 영화 ‘쥬라기 공원’의 실제 모델인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수(SUE)’가 전시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거대하고 화려한 이 화석이 필드박물관에 오기까지, 그리고 전시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험난하기만 했다.

‘수’의 사나운 운명은 상업적 화석 사업체인 블랙힐스가 먼저 발굴하면서 시작됐다. 역사적 규모의 유물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땅 주인부터 지역 사회, 나중에는 연방정부까지 나서서 소유권 다툼을 벌였다. 이 사건에 증인으로 불려 다녔던 저자의 경험을 통해 다른 측면에서 ‘수’ 분쟁 사태를 읽어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여러 다툼 끝에 ‘수’가 필드박물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다. 박물관은 달력용 사진을 소더비 측에 제공하다 우연히 경매에 ‘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안다. 당시 갓 취임한 대표는 ‘수’가 아이콘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확보 작전’에 돌입한다. 디즈니, 맥도널드 등 후원 기업과 전문 딜러, 경매사 등 많은 사람이 합심한 작전이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도 비밀리에 참여한 가운데 승리는 필드박물관에 돌아갔다. 그 긴박한 과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박물관은 정적이다’는 편견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의 화석 모형. 픽사베이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수’를 공개하기 위한 준비 과정도 흥미롭다. 거대한 공룡 뼈를 전시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박물관은 외주 입찰에 나선다. 다른 박물관에서 일하던 전문가가 가장 높은 가격에 제시한 방법이 채택된다. 뼈를 손상시키지 않고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연구를 위해 하나씩 빼낼 수도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일하는 박물관에서 휴직을 허락하지 않자 그 전문가는 퇴직하고 업체를 따로 차린다.

또 ‘수’의 발 복원 조립을 마쳤을 때는 ‘쥬라기 공원’ 두 편을 완성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박물관을 찾았다. ‘수’는 현재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였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뼈를 보고 “생각보다 작네”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 속 티라노사우루스 크기를 감안하면 그럴 법한 반응이다.

‘수’ 말고도 박물관을 채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연구도 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저자는 친절히 들려준다. 새로운 연구를 위해 수십 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 1년 동안 관련 재단을 설득한 일, 물고기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 심해 낚시 대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살을 발라줄 테니 뼈를 달라”며 ‘딜’에 나서는 일 등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일도 많다. 이렇게 박물관 속 다양한 인간 군상, 역동적인 모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저자는 큐레이터의 일도 결코 고고한 연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