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낼 수 있을까/놈 촘스키 지음·강주헌 옮김/296쪽·1만5000원·열린책들
그러나 이 한계들은 장점도 된다. 언어학자이면서 정치평론가인 이 사상가가 긴 인생 여정에 걸쳐 풀어놓은 정치적 사색의 재료들을 일별할 수 있다. 현존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악(惡)을 자본주의와 미국에 쏟아놓는 그의 특징을 사전에 아는 한, 그의 분석은 투명하며 비교적 견고하게 읽힌다.
오늘날 세계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저자는 ‘RECD(really existing capitalist democracy)’로 칭한다. 약자를 한 단어로 그대로 읽으면 ‘난파하다, 부서지다’라는 뜻을 가진 ‘wrecked’와 발음이 같다. 미국 초대형 은행들이 수익을 못 내면 국가가 도와준다. 은행 주주들을 위해 보통 국민인 납세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 후반부의 세 개 장은 동구권 붕괴 이전에 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자본주의만의 속성일까. 현대문명 고유의 자기 파괴적 속성과 자본주의의 속성을 뒤섞어놓은 부분은 없을까. 옛 공산권의 비효율과 환경 파괴도 극심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명 사상가 촘스키는 붕괴 이전의 현실 공산주의도 서슴없이 경멸해왔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의 결과로 판단하는 시대의 모든 병리가 적절한 범주화를 거쳤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