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 자리에/올리버 색스 지음·양병찬 옮김/372쪽·1만9800원·알마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년. 수많은 독자가 사랑했던 그의 글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분명 슬프다. 그런데 미공개 산문 7편을 포함한 에세이집이 다시 찾아오다니. 팬들에겐 축복이자 선물일 터.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저자를 새로이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홀로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북미 대륙을 횡단한 20대부터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종이 책’에 대한 사랑을 접지 못한 말년까지. 그의 글은 여전히 종이 책이 전하는 질감만큼 온기가 넘친다.
그래도 어쩌랴. 물어도 준치요 썩어도 생치다. “82년 전 나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었듯이, 조만간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갈 테니”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집어들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올리버 색스는 올리버 색스니까. 모든 게 그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돌아가고 삶은 이어진다. RIP.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