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지 1년을 맞지만 오늘 오후 한국 단독으로 진행하는 반쪽 기념행사는 1주년의 꿈과 현실을 보여준다. 두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도보다리 대화도 가졌지만 그때의 감격과 기대와 달리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요원하고 남북, 북-미 관계는 꽉 막힌 상태다.
‘판문점 이후 1년’이 길을 잃은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은이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1년 전 공동 언론 발표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공동 목표”라고 약속했지만 비핵화 실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쇼 수준에서 멈췄고 하노이 회담에서는 비핵화의 개념, 목표를 공유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와 달리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남북관계도 ‘남측의 일방적 구애와 북의 고압적 외면’이라는 과거의 고질적 패턴으로 돌아갔다. 1년 전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의 설득에 귀 기울이며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던 김정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남측을 무시하고 있다.
남북 정상은 1년간 세 차례 만나 문 대통령은 백두산도 오르고, 평양 5·1경기장에서 연설도 했으나 ‘북한 비핵화’의 실체에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은 결코 포기해선 안 되지만 비핵화에 우선하는 ‘남북관계 과속’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1년은 견고한 한미공조와 대북제재, 그리고 유연하지만 당당한 대북 정책만이 북한을 비핵화와 개방으로 이끌 수 있음을 재확인시켜준 학습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