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국회에서 사흘째 막말과 고성, 몸싸움이 이어졌다. 여야가 정면충돌하면서 헌정 사상 초유의 불명예 기록을 양산했다. 공수처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바른미래당의 두 의원을 교체하기 위해 팩스 사·보임한 것을 비롯해 국회의장의 병상 결재, e메일 법안 제출이 이뤄졌다. 33년 만에 국회 경호권이 발동된 가운데 못을 뽑는 ‘빠루’와 장도리까지 등장했다. 이런 물리적 충돌을 근절하고 협치하자고 만든 국회 선진화법 통과 이후 7년 만에 벌어진 퇴행적 ‘폭력 국회’의 낯 뜨거운 장면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의 열쇠를 쥔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꼼수’가 일차적 원인을 제공했다.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강제적 당론 표결이 어려워지자 ‘당의 입장’이라는 모호한 방식을 채택해 1표 차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추인됐다고 밀어붙인 것이다. 강제 당론이 아니어서 의원들 사·보임은 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김관영 원내대표는 팩스 사·보임을 강행했다. 뒤늦게 김 원내대표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무리수였다.
현 정부 들어서 ‘유치원 3법’ 등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지만 이번처럼 극한 충돌은 없었다. 내년 총선의 룰을 정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비롯해 국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심도 있는 토론과 협상 대신 이렇게 폭력과 폭주를 거쳐 입법 과정을 밟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는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관행이 이어져왔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배제된 채 4당만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하려는 현 상황은 책임 소재를 떠나 결코 바람직한 진행방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