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돈육 수입 늘리면 국내가격도 요동
최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돼지고기 매대. 돼지고기는 통상 야외 활동이 많아지는 봄부터 가격이 오른다. 올해는 중국에서 발생한 ‘아프리카 돼지열병’ 사태로 하반기에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의 역사는 길다. 반세기 전에도 주요 무역 물자로서 신문에 등장했을 정도다. 이번에는 덤핑이나 무역의 문제가 아니라 돼지 질병 때문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중국에서 발병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때문이다.
○ 치사율 100% 동물 질병, 중국서 발생
그런데 이 병이 중국 남부에 있는 하이난(海南)섬에서 발생한 뒤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처음 돼지열병이 발생한 이후 이달 22일까지 129건의 감염 상황이 발생했고 현재까지 폐사시킨 돼지가 102만 마리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 결과 올해 1분기(1∼3월) 사육 돼지 수가 1억8000만 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 줄었다. 돼지고기 생산량도 1463만 t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25% 감소했다.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는 다른 고기로 대체될 수 없을 정도로 필수품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생전 가장 즐겼다는 음식도 돼지고기를 이용한 ‘훙사오러우(紅燒肉)’였다.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중국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이달 1∼11일 중국 시장에서 돼지고기 1kg의 도매가격은 20.3위안(약 3500원)으로 지난해 4월 평균에 비해 22.6%가 올랐다.
○ 하반기 국내서도 가격 급등 가능성
이 때문에 하반기(7∼12월)엔 국내 돼지고기 가격 상승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반기(1∼6월)엔 수입을 한 재고가 남아 있어 가격이 비교적 안정되지만 하반기엔 이 물량이 부족해진다는 것.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하반기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1년 전보다 최대 12.7% 오른 kg당 4800원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 소비가 많은 삼겹살과 앞다리살은 중국에서도 최근 수입량이 급증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삼겹살은 중국에서도 두 번째로 소비가 많은 부위인 데다 올 들어 중국의 수입량이 1년 전보다 10.1% 증가했다.
○ 방역 뚫리면 한국도 문제
더 큰 문제는 방역이다. 치료제가 없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국내에 상륙하면 중국의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달 9일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부부처가 국내에서 발병하지도 않은 가축 질병에 대해 담화문을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퍼지는 중이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9일 전북 군산시 군산항으로 입국한 한 중국인의 피자 돼지고기 토핑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도 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아프리카에만 있던 이 질병이 유럽으로 퍼진 것도 비행기 등을 통해 음식 상태로 확산됐다”며 “국내에 조금이라도 퍼지면 돈육산업이 초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야생동물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야생 멧돼지 역시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 동유럽 국가에서 야생 멧돼지가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유입 경로로 지목됐던 선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의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비무장지대(DMZ)를 통한 확산도 안심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 세종=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