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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최고의 선택은 없다, 최적의 선택이 있을 뿐”

입력 | 2019-04-29 03:00:00


평소 울산 출장이 잦다. 서울 수서역에서 울산역까지는 고속철로 두 시간 거리다. 사는 곳이 경기 양평이다 보니 전철로 수서역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도합 세 시간 반이다. 여기에 울산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다섯 시간은 잡아야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물론 비행기나 고속버스 등 다른 옵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도 공항까지의 이동과 항공 수속 등을 감안하면 시간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고속버스 역시 양평에서 서울고속터미널까지 한 시간 반, 울산까지 네 시간이니 역시 다섯 시간을 넘어간다. 물론 비용은 비행기, 고속철, 고속버스 순으로 저렴해진다.

또 다른 대안도 있다. 양평역에서 울산 태화강역까지 갈아탈 일 없이 한번에 쭉 가는 루트다. 고속철이 아닌 무궁화호라 소요시간은 근 여섯 시간. 그 대신 태화강역은 도심에 있으니 울산 내 이동도 간편한 데다 비용은 여타 교통편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교통수단 중 울산 출장에 있어 최고의 선택은 무엇일까.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기업 경영에서 경쟁의 본질과 전략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흔히들 경영을 전쟁에 비유한다. 자고로 시장이란, 적을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쟁에서의 승자는 단 하나다. 그러니 적을 무찌르는 데 혈안이다.

하지만 경영에서 이야기하는 경쟁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게 아니라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적만 때려눕히면 승리할 수 있는 전쟁과 달리 기업 경영은 다원적이고 다층적이다. 적을 이긴다고 되는 게임이 아니라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객이란 사람들은 십인십색이다.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지만 ‘유니클로’의 실용성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라’의 패션 감성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빠른 교통편을 좋아하지만 어떤 이는 저렴한 선택지를 선호한다. 심지어 느린 옵션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크루즈 유람선이 그렇다. 판타지와 로망을 만끽하려 탄 배이니 쏜살같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안 되는 것이다.

75억 명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니즈를 가진 것이 고객이다. 이러니 획일적 기준에 따른 최고의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 아니다. 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적확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이기는 것이다.

어느 항공사가 경쟁사를 압도하기 위해 무료 기내식을 처음 도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객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경쟁사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너도나도 무료 기내식을 도입했다. 고객 감흥은 자연스레 떨어졌다. 비용이 더 들어갔지만 고객의 충성도는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쟁일까. ‘최고’를 지향하는 경쟁은 이처럼 소모적이다. 승자가 없는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양평에서 울산으로 이동할 때 ‘최고’의 선택은 없다. 오로지 ‘최적’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시간이 금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고를 테고,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이 당기는 사람이라면 고속버스를 택할 것이다. 환승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무궁화호를 선택할 것이다. 고속철 출장의 편의성과 분위기를 즐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같은 사람의 선택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과 내일의 상황은 다르게 마련이다.

여기서 ‘전략’을 생각하게 된다. 전략은 경쟁에 직면한 조직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탁월한 성과를 내려면 경쟁자보다 더 나아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경쟁자와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경쟁은 ‘이기고 지고’의 스포츠와 다르다. ‘좋아하거나 아니거나’의 문화예술을 닮은 게 경쟁이다.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제대로 된 경쟁 전략은 남과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나의 링에서 나의 룰로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