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1980년쯤, 페루 마추픽추 골짜기에 피어 있는 빨간 글라디올러스를 맛있게 먹고 있던 라마 두 마리와 마주쳤다. 신기하게도 꽃봉오리만 골라 먹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궁금증에 나도 봉오리를 따 먹어 보았다. 아무 맛이 안 났다. 어릴 적 빨간 히비스커스는 봉오리째 따서 입에 대고 빨면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물론 쪽쪽 빨다 보면 배가 고팠던 기억도 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길가에 널려 있어 누구나 오키나와를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엔 말린 것이 차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새콤달콤한 차를 얼음과 함께 띄워 마시는데 ‘항산화차’로 인기가 많다.
뉴욕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식당 주인이 자기 고향 프로방스에서 가져왔다고 요리에 응용하라며 라벤더를 건네준 적이 있었다. 쌀알 같은 모양과 보라색, 짙은 향을 가졌다. 휘핑크림을 끓인 후 라벤더 꽃을 담가 향이 나도록 두었다가 꿀과 섞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는 시럽에 절여 말린 라벤더 꽃봉오리로 장식을 해냈다.
1992년 멕시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 ‘띠따’는 메추리에 장미 잎을 넣고 갈아 만든 소스를 곁들여 그가 사랑하는 페드로에게 건네준다. 정력을 높이는 레시피로 식탁에서 같이 먹었던 모든 이를 흥분시키는 장면이 연출된다.
식용 꽃의 역사는 기원전 1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즈워터, 오렌지 꽃 향수는 요즘도 중동지역 가정에서 많이 사용한다. 크로커스의 수술을 말려 요리에 사용하는 사프란, 맥주의 주재료인 홉도 꽃이다.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도 채소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꽃을 먹는 것이다.
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농사일에 바쁘다. 식용 꽃과 향이 나는 허브들을 위주로 기르기 때문이다. 한련화는 아름다운 모습과는 다르게 매콤한 맛이 느껴져 꽃과 잎을 샐러드 재료로 사용한다. 호박도 빠뜨리지 않는다. 호박보다는 꽃을 더 좋아해 이탈리아식으로 속을 채워 튀기거나 샐러드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농약의 확산으로 식용 꽃은 많이 사라졌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것은 유기농으로 재배돼 고가지만 집에서 기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그만 화분에서라도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꽃을 보고 먹고 마셔 보자. 행복을 가득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