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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총선 흔든 反난민 바람… 극우세력, 44년만에 의회 입성

입력 | 2019-04-30 03:00:00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카탈루냐 독립 반대-反페미니즘 등 노골적 극우정책에도 24석 차지
집권 사회노동당 123석 1당 올라… 과반 못미쳐 연정 구성 시간 걸릴듯




극우의 환호… 집권당은 ‘절반의 승리’ 28일 스페인 총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극우정당 복스를 이끄는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가 수도 마드리드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위쪽 사진). 복스는 스페인 민주화가 이뤄진 1975년 이후 44년 만에 극우정당의 원내 진입을 이뤄냈다. 집권 사회노동당을 이끄는 페드로 산체스 현 총리(아래쪽 사진 가운데)도 이날 마드리드에서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마드리드=AP 뉴시스

28일 스페인 총선에서 1975년 민주화 후 44년 만에 최초로 극우정당 복스가 전체 350석 중 24석을 얻어 원내에 진입했다.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1936년부터 39년간 철권통치를 한 스페인에서는 극우정당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가 많았지만 전 유럽에 부는 반(反)난민 및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바람이 스페인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복스를 이끄는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43)는 원내 진입 확정 후 수도 마드리드 마거릿대처 광장에 등장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며 더 강하게 싸우겠다. 선조가 남긴 유산과 자식들에게 남길 미래를 위해 함께 걸어가자”고 외쳤다.

라틴어로 ‘신의 목소리’란 뜻의 복스는 아바스칼을 비롯해 우파 국민당의 극우 성향 의원들이 2013년 12월 창당했다. 2016년 총선에서 불과 4만6781표(0.2%)를 얻어 의석 획득에 실패했지만 3년 만에 267만 표(10.3%)를 획득하며 ‘변방의 극단적 소수자 모임’에서 ‘중앙정계 주역’으로 거듭났다. 이날 광장 옆 호텔에 설치된 임시 기자회견장에는 280여 명의 내외신 기자가 몰려 복스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복스는 강력한 카탈루냐 독립 반대, 반난민, 반페미니즘, 낙태 및 동성애 반대, 가정폭력 방지법 폐지 등을 주창한다. 심지어 프랑코 독재를 옹호하는 퇴역 군 장성들이 후보로 나섰는데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 급부상한 계기로는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논란이 꼽힌다. 중앙정부와 카탈루냐의 오랜 대립에 지친 민심이 ‘스페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복스로 쏠렸다는 평가다. 국민당이 거듭된 부패 스캔들로 우파 대표 정당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다시피 한 것도 복스에 호재로 작용했다.

아바스칼 대표의 이력도 화제다. 그는 1976년 카탈루냐 못지않게 분리독립 성향이 강한 바스크 빌바오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프랑코 총통 시절 인근 알라바 시장, 부친도 전 국민당 의원인 우파 정치인 가문 출신. 10대 때부터 국민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했고 2013년 “국민당의 모호한 난민 정책에 반대한다. 더 보수적이고 더 종교적이며 더 민족주의적 사회를 만들자”며 복스를 창당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을 딴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Make Spain Great Again)”를 외쳐 화제를 모았다. 한때 몸담았던 국민당 등 다른 우파 정당도 ‘겁쟁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스페인의 국가 자부심을 지키겠다”고 주장하면 지지자들도 “스페인은 영원하라”는 구호로 답했다. 유세 기간에 복스 후보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스페인 국기가 펄럭였다.

프랑스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여타 유럽 극우정당과 복스의 차이점도 두드러진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기성 엘리트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저소득·저학력자가 극우정당의 지지 기반이지만 복스 지지자에는 고소득·고학력자가 상당수 포함됐다. 로저 이트웰 영국 바스대 교수는 폴리티코유럽에 “복스는 포퓰리즘 정당이라기보다 애국과 전통을 강조하는 우파 정당”이라고 평했다.

한편 집권 사회노동당은 이날 총선에서 28.7%의 득표율로 123석을 확보해 1당에 올랐다. 하지만 과반인 176석에 못 미쳐 ‘절반의 승리’만 거뒀다고 AP통신 등이 분석했다. 사회당이 어떤 정당과 연정을 구성할지도 관심이다. 중도우파 시민당 혹은 극좌 포데모스 등이 거론되나 누구와 손잡더라도 정부 구성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극우 포퓰리즘 및 반기성정치 물결이 5월 말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