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내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와 함께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린다. 이에 앞서 오늘은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989년 즉위한 이래 31년간 이어져온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막을 내린다. 1926년부터 64년간 이어졌던 쇼와(昭和)시대가 전쟁과 패전, 복구 및 경제성장의 시대였다면 헤이세이는 평화를 추구하고 이뤘으되 일본 사회와 경제가 쪼그라들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 기록된 시대이기도 했다.
왕과 연호가 바뀌는 개원은 일본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도 이웃나라의 새 시대 출범을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레이와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안타깝게도 한일관계는 이런 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위안부재단 해산, 초계기 갈등 등이 잇달아 터지면서 양국은 감정적으로도 등을 돌리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이 정치 외교 분야의 불협화음을 넘어 경제 분야로 옮겨져 관세 인상 등의 보복 조치가 연일 언급되는 등 수교 이후 최악의 단계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최근 동아일보 조사에서 한일 전문가 10명 전원이 ‘레이와 시대 개막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라 진단했다. 특히 한일 갈등의 정점에 선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대립적인 정치적 지향점을 추구해왔다. 아베 총리는 ‘전후로부터의 탈피’를 주창하며, 과거사에 대해 전임 정권들이 했던 일정한 수준의 반성마저 부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친일을 비롯한 적폐청산과 북한과의 민족화합을 주요 관심사로 삼는다.
한일은 애증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외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있다. G20 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만나 양국관계 추락의 반등점을 찍고 실무 차원에선 강제징용 문제 등 난제를 풀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 한일관계의 꼬인 매듭을 풀려면 G20 회의를 목표로 지금부터 양국이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