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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조에 5,6개 파벌… 정치판하고 똑같다”

입력 | 2019-04-30 03:00:00

[노조원들이 보는 노조의 현주소]
한국판 ‘러스트 벨트’ 노조 집행부-노조원 30명의 고백




“노조가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모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노조 안에 당(黨·파벌)이 5, 6개나 있는 공장도 있어요. 정치판이죠.”

동아일보 취재팀은 이달 초 현대자동차의 한 공장 앞 식당에서 노조원 6명과 자리를 같이했다. 서로에 대한 경계가 조금 누그러지자 한 조합원이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우린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노조 때문에 신차를 제때 투입하질 못합니다. 먼저 차를 만들고 나서 노사가 협상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노조 집행부 간부와 노조원들은 취재팀에 노조의 구태를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적극 해명했다. 본보의 노조원 심층 인터뷰는 노동개혁을 어렵게 하는 노조 내부의 원인과, 노조원들이 사회에 느끼는 아쉬움을 동시에 소개함으로써 노동개혁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노조원들이 노조의 정치집단화를 우려한 것은 한국 사회의 노사관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정치 노조’가 흔드는 노사관계


현대차 노조는 매년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사측은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의 협상에서 노조는 기술직과 단순노무직 구분 없이 일률적인 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사측은 “임금을 과도하게 올리면 경영 위기가 온다”고 맞선다. 파국 직전에 노사는 임금 및 단체협상안에 사인한다. 결과만 보면 노사가 당초 요구에서 조금씩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너스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지고 노조는 인사와 경영에 한 걸음씩 더 개입한다. 노조원들은 이를 두고 노조 집행부가 ‘정치 논리’에 따라 꾸려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회사에 여러 노조 파벌이 있고 이들이 조합원 표를 얻어 당선되기 위해 서로 경쟁합니다. 이번 협상에서 회사로부터 자장면 한 그릇만 받으면 되는데 표를 얻기 위해 자장면 곱빼기를 요구하는 식입니다. 그럼 다음 선거 땐 자장면 곱빼기에 군만두라도 더 달라고 하는 쪽이 인기를 얻는 식이지요.”(노조 관계자 A 씨)

노조 집행부가 회사 인력구조의 선순환을 위해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충 대신 신입직원을 늘리는 협상을 염두에 두다가도 결국 현 노조원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전력을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는 대기업 노조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노동귀족으로 불리는 것은 정치집단으로 변질된 노조가 회사 측과 담합하며 기득권의 장벽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조원들은 수십 년을 한 직장에서 일한 자신들의 노고를 ‘귀족’이란 말로 비하하는 사회적 편견을 서운해했다. “화이트칼라의 고임금은 정상적이고 블루칼라의 고임금은 비정상이냐”고 반문하는 노조원도 있었다.

이달 4일 만난 현대차 전주공장의 노조원 B 씨는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자신을 노동귀족이라고 한다며 씁쓸해했다. 울산의 한 현대차 관련 노조 관계자는 “집에 있는 식구들, 애들 이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공장에 살다시피 하는 사람이 많다”며 “직원들이 특근, 잔업을 해 돈을 버는 현실을 인정해주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다만 노조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대차 노조원 C 씨는 “1990년대만 해도 현대차 노조는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우리만 생각하지 않나”라고 했다.

○ 노조 없인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노조원 스스로 느끼는 모순과 비판 여론에도 20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것은 노조를 ‘일자리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구조조정 한파로 동료들이 직장을 잃고 가족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기업이 강조하는 상생에 대한 신뢰가 줄었다는 노조원도 적지 않았다. 인천 공단의 한 대기업 협력업체 직원은 “노조가 없으면 해고 시 노무사나 정부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며 “노조가 복직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원들은 갈등적 노사관계를 풀려면 노사가 모두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견해차로 다툴 순 있어도 서로를 아예 망가뜨리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 집행부의 간부를 지냈던 D 씨는 노조의 역할을 ‘윤활유’에 비유했다.

“노조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회사와 노동자의 윤활유가 돼야죠. 회사가 망하면 노조도 망한다는 걸 이젠 노동자도 알 필요가 있어요.”

울산=김준일 jikim@donga.com / 인천=최혜령 / 전주=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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