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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김예윤]이벤트성 장애인 정책은 그만

입력 | 2019-04-30 03:00:00


김예윤 사회부 기자

이달 서울시는 장애인 관련 행사와 정책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10일 ‘장애인 무료 여행지원’, 15일 ‘장애인·비장애인이 어울리는 서울누리축제’, 17일 ‘장애학생 맞춤형 과학실험교육’, 18일 ‘장애인 맞춤형 화재안전대피 체험교육’, 23일 ‘시민청 장애 체험부스 운영’…. 세기도 숨 가쁘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서다.

1일부터 시행 중인 ‘저상(底床) 시내버스 탑승 전 전화예약시스템’을 장애인 허종 씨(41)와 25일 도전해봤다.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원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회사 측은 해당 정류소에 도착할 저상버스 3대의 단말기로 예약 상황을 알리는 시스템이다.

시행과 홍보를 한 지 한 달이 돼 가는데도 허술한 점이 눈에 띄었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오전 7∼9시, 오후 6∼8시)와 심야시간(밤 12시 이후) 말고는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오후 5시에 전화를 거니 한 버스회사에선 “업무시간 종료”라는 기계음만 나왔다. 버스운전석 단말기로 메시지를 전송한다는 홍보 내용과 달리 버스회사 측은 “단말기 메시지는 기사가 보지 못할 수 있어 전화하는 게 낫다”며 기사에게 전화로 예약을 알렸다. 운행 중 운전자의 휴대전화 통화는 다른 승객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제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정책 수립 단계에서 과연 현장 상황을 충실히 들여다봤는지 의심스러웠다.

휠체어를 탄 허 씨가 저상버스에 오르는 모습은 낯설었다. 버스 뒷문 바닥에서 경사판이 나와 인도에 연결됐다. 저상버스를 타왔지만 휠체어는 뒷문으로 탄다는 것도, 경사판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서울시는 17년 전인 2002년 4월 저상버스를 도입했다. 그러나 기자는 휠체어가 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허 씨는 “휠체어 장애인은 버스를 거의 못 탄다”고 말했다. 그동안 저상버스 비율은 늘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공허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시는 17일 저상 시내버스 비율을 현재 43.5%(시내버스 7160대 중 3112대)에서 2023년까지 10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20일 서울시는 “장애인의 날 하루 동안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비딱하게 볼 필요는 없지만 하루짜리 생색내는 이벤트로 보인다. 장애인 정책이라는 것들이 평소 장애인들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반증하는 듯해서다.

함께 저상 시내버스 전화예약시스템을 점검하면서 여러 가지 개선점을 지적한 허 씨는 취재가 끝난 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타는 버스를 전화로 예약해야만 탈 수 있다는 것부터 이미 일상의 차별이라는 점을 짚어주시면 좋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예약하지 않고 휠체어에 탄 허 씨가 손을 들었지만 버스 두 대는 지나쳤다. 내일은 5월 1일이다. 4월이 지나도 거리에서 그들을 볼 수 있을까.

김예윤 사회부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