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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연욱]‘북한 강박증’ 버려야 산다

입력 | 2019-04-30 03:00:00

경제 어려워 남북관계 이슈에 집중… 北 총선 노림수에 휩쓸리지 말아야




정연욱 논설위원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메시지는 간혹 의표를 찌른다. 3월 14일자 외교전문매체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는 시기에 그에게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 줄 평화 이니셔티브에 베팅을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눅이 든 채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2·28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이 국내 정치에 미칠 파장을 냉정하게 진단한 것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에 작용할 여러 변수를 점검하면서 북-미, 남북관계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 여권에 불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정인의 특보직에 ‘정치’ 분야를 추가해도 될 것 같다.

내년 총선은 집권 4년 차 정국의 향배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권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으로 가느냐, 아니면 안정적 기반을 굳혀 2022년 대선까지 질주하느냐 판가름 날 것이다. 여권은 물론 자유한국당도 명운을 걸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국회에서 여야가 선거제 개편 등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며칠째 한 치 양보 없이 대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을 총선 전초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총선 판세에 중요한 경제지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권은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연말쯤 나타날 거라고 장담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선 경제 대신 북-미, 남북관계 개선의 외교적 돌파구가 절실하다. 하지만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되지 못할 경우 여권으로선 총선에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문정인의 메시지는 여권의 이런 복잡한 심경을 콕 집어낸 것이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는 2·28회담 이후 평화 프로세스의 불씨 살리기에 다걸기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11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요구를 거부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놓고 우리 정부를 향해 ‘오지랖’ 운운하며 안하무인이다. 김정은에게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지만 아직까지 답신도 없고, 북측의 거부로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은 반쪽 행사로 끝났다. 평화 프로세스의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는 여권의 절박감이 느껴진다. 최근 인사청문보고서 채택도 안 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김 장관이 연일 대북제재를 우선하는 미국과 엇박자를 감수하더라도 선(先)남북경제협력 메시지 발신에 주력하는 데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북한의 ‘갑질’은 그 나름대로 정치적 계산을 끝낸 결과일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의 정치적 의미를 잘 알고 있을 북한은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막말을 불사하며 ‘갑질’ 수위를 더 높여가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우리 정치와 동떨어진 변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정치 현실에 개입해 온 상수였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 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 프로세스가 막혀 있어 답답하지만 멈출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문정인이 말한 대로 외교적 성과의 ‘정치적 이득’을 생각할수록 북한은 ‘꽃놀이패’를 쥐고 판을 흔들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정치 일정에 집착하면 ‘북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칫 동맹외교의 파열음이 날 수도 있다. 초당적 외교안보 이슈에 정치색이 덧칠되면 실제 선거에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여권의 이 딜레마, 총선일이 다가올수록 더 커질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