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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시간 돌던 재봉틀… 70년대 다락방 공장 재현

입력 | 2019-05-01 03:00:00

청계천 전태일기념관 정식 개관



30일 정식으로 문을 연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3층 상설전시실에 있는 나무 모양 전시물에 관람객들의 소감들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높이 1.5m 남짓한 다락방.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서 있을 수조차 없다. 나무책상 5개 위에는 낡은 재봉틀 5대가 각각 놓여 있다. 단추달이용 오버로크용…. 이곳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3층 상설전시실의 ‘다락방 속 하루’라는 전시공간이다. 1960, 70년대 서울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을 재현했다. 당시 여공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재봉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실밥을 먹어가며 ‘미싱’을 돌렸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전태일기념관이 30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종로구 청계천로, 그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 평화시장 인근 수표교에서 100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지상 6층 기념관 전면에는 1969년 여공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그가 근로감독관에게 손수 쓴 편지를 가로 14.4m, 세로 16m의 텍스트패널로 만들어 글자 그대로 붙였다.

상설전시실에는 ‘전태일의 꿈, 그리고’를 주제로 그의 유품을 전시한다. 1965년 17세의 나이로 마주한 쓰라린 현실을 옮긴 일기도 있다. 그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유품과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각종 판본도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모범업체 태일피복’ 전시가 다음 달 말까지 열린다. 그가 1969년 겨울부터 1970년 봄까지 직접 작성했던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실제 피복업체를 꾸렸다면 이랬을 것이다’라고 상상해본 공간이다. 25장짜리 사업계획서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사업목적부터 운영방법, 홍보계획 같은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담았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벽에는 ‘태일피복 전태일 대표’의 인사말이 붙어 있다. 사훈은 정직.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 생산원가와 생산과정을 고객들에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옆에 붙은 구인공고에서는 ‘미싱사/시다/교사/운전사’를 모집한다고 돼 있다. 근무환경은 주 6일, 하루 8시간 근무. 임금은 숙련 미싱사는 3만 원, ‘시다’(작업조수의 일본어)는 8000원이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 3∼8배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념관은 매년 서너 차례 기획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기념관 곳곳에는 관람객들이 당시 근로여건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김민주 씨(42·여)는 전 열사가 조직한 ‘바보회’가 실제로 만든 설문지 문항을 보며 답을 작성했다. 설문 문항은 ‘1개월에 몇일(며칠)을 쉽니까?’ ‘1개월에 몇일을 쉬기를 희망합니까?’ ‘작업장에 근로기준법 二十二(이십이)조의 규정을 비치한 것을 볼 수는?’ 같은 것들이다. 설문을 마친 김 씨는 “지나가다가 건물 외벽이 특이해서 관심을 갖고 보니 전태일기념관이어서 들어와 봤다”며 “설문을 작성하면서 지금 근로환경은 많이 달라졌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열린 개관식 인사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분이 그립고 함께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 열사의 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특별히 청계천에 생긴 기념관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국민과 함께 울고 웃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상 6층, 연면적 1920m²인 기념관은 서울시가 전태일재단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기념관 5층에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입주할 예정이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