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 / New 아세안 실크로드] <8> 동남아 매혹시킨 한국산 화장품
‘방콕의 명동’이라 불리는 시암의 한 쇼핑몰인 시암센터 입구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하우스가 입점해 있다. 이 브랜드의 콘셉트인 ‘공주의 방’으로 꾸며진 매장에는 평일 오후에도 다양한 화장품을 체험해 보는 젊은 고객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19일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우사 담락 씨(21)는 “이모 추천으로 18세부터 에뛰드하우스 제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가격이 비싸지 않고 품질이 좋다”며 “친구가 여드름 피부에 좋다고 추천한 이니스프리 화장품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세안의 화장품 시장은 2020년까지 연평균 10%씩 성장할 정도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KOTRA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K뷰티의 신흥시장으로 꼽히는 국가의 화장품 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10∼14%에 이르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화장품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가도 2020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방콕 시내에서 가장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시암파라곤 백화점. 이곳에 있는 LG생활건강의 후 매장에서 만난 티타난 낫타나왓 씨(40)도 “해외 브랜드 화장품을 쓰다 친구 소개로 한국 화장품을 쓴 지 4개월이 됐다”며 “서양 제품보다 내 피부에 더 맞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피부 잡티가 사라졌다. 한국인처럼 쫀득한 얼굴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백화점의 설화수 매장에서 만난 차야낫 베얌마하몽로 씨(33)는 “윤조에센스와 자음생크림을 써서 피부톤이 밝아졌다”며 “내 추천으로 엄마에 이어 여동생, 남동생까지 설화수를 쓴다”고 말했다. 매장 직원은 차야낫 씨 가족은 연간 35만 밧(약 1266만 원) 이상 구매하는 최우수(VIP) 고객이라고 귀띔했다.
K뷰티 브랜드들은 지인 추천과 입소문을 중요시하는 태국 문화에 맞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체험 공간이 많은 현지 화장품 편집숍 ‘이브앤보이’에 입점한 설화수는 보다 많은 사람이 써볼 수 있도록 설화수 미니어처(30mL) 제품을 특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현지법인의 이영재 차장은 “가족적 유대감을 중시하고 나와 친숙한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경향이 높은 태국인에서는 한 번이라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화장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곳 중 하나다. 지난달 17일 베트남 호찌민의 한 화장품 편집숍에 입점한 애경산업의 ‘AGE 20’s(에이지투웨니스)’ 매장은 20대 베트남 여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을 묻자 매장 직원은 ‘에센스 커버 팩트’를 꼽았다. 쿨링 기능이 함유된 이 제품은 베트남의 더운 기후와 맞아 ‘아이스팩트’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매장에서 만난 튜이티엔 씨(22)는 “선블록을 얼굴에 여러 겹 바르면 답답하고 피부 노화가 빨리 오는데 이 에센스 팩트는 하나만 발라도 자외선이 차단되고 수분감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아세안 국가 여성들은 덥고 습한 기후 탓에 피부 화장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팩트 제품을 쓰더라도 마무리는 보송보송한 파우더로 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팩트를 비롯해 각종 에센스와 세럼 등 ‘쫀득한’ 피부를 돋보일 수 있게 하는 화장품이 아세안 지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토너 에센스 크림 정도에 그쳤던 화장 단계가 5, 6단계에 이를 정도로 많아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스킨푸드, 네이처리퍼블릭 등의 태국 총판을 맡고 있는 정성훈 씨는 “하얀 피부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세안 국가 사람들에게 화이트닝과 링클케어 등의 K뷰티 제품도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콕=염희진 salthj@donga.com / 호찌민=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