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후폭풍]‘정치 실종’ 방관하는 靑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왼쪽)과 강기정 대통령정무 수석비서관이 3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은 때가 아니고,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청와대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청와대 정무 라인의 활동에 대한 질문에 30일 이같이 답했다. 여야의 대치가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청와대라도 물밑 조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청와대는 관전자에 그쳤다. 오히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잇따른 페이스북 게시물로 자유한국당을 자극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매우 안타깝다”고만 했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정무 라인은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한국당은 물론이고 바른미래당과도 별다른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고 했다. 국회 일이라는 이유로 모든 상황을 더불어민주당에 떠맡긴 것.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당 대표직을 맡은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아직 문 대통령과의 어떠한 접촉도 없다.
조 수석은 오히려 이런 치열한 국회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문제를 담당하는 조 수석은 지난달 25일부터 ‘페이스북 정치’를 이어갔다. 조 수석은 30일 새벽 공수처 설치 법안의 패스트트랙 성사가 이뤄진 직후에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의회주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했다. 한 여당 의원은 “여당 내에서도 조 수석을 두고 ‘차라리 가만히 좀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국회의 극한 대치는 청와대에 유리할 게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가 늦어질수록 국민의 삶과 민생 경제에 부담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추경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것이지만 청와대가 계속해서 뒷짐을 지고 있다면 국회의 공전은 길어지고 그만큼 추경 처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연일 독려하고 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입법 역시 국회가 정상화된 뒤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국당이 지금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서서히 출구 전략을 찾지 않겠느냐”는 태도다. 먼저 나서서 설득하기보다는, 한국당이 스스로 전략을 바꾸기를 기다리겠다는 의미다. 청와대의 ‘마이웨이’ 역시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색된 정국을 풀어가는 역할도 결국 청와대가 아닌 여당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8일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추경을 고리로 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타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이 한국당 의원들의 국회 선진화법 위반 추가 고발을 미룬 것도 물밑 협상을 염두에 둔 유화 제스처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박효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