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후폭풍]장내외 투쟁 모든 카드 동원
“하나가 되어 싸우자”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연단에 선 나경원 원내대표(왼쪽)가 “하나가 되어 함께 싸웁시다”란 구호를 외치자 황교안 대표(앞줄 오른쪽) 등 의원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국회에서 벌어진 6일간의 격돌 끝에 선거제 개편안 등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이런 자평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싸우는 야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야당 투쟁의 상징인 ‘천막 당사’ 카드가 등장했고 당내에서는 공개적으로 의원직 총사퇴 주장까지 나왔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시작으로 삼아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해 가용한 투쟁 카드를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 한국당, “패스트트랙 지정은 ‘4·29 좌파정변’”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번 투쟁 과정에서 ‘모두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됐다. 의원 당직자 보좌진 모두 혼연일체가 돼 일치단결했다”고 강조했다. 당 관계자는 “황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주요 당직자 인선 문제 등으로 계파 갈등이 불거지는 듯했지만 이번에 ‘확실한 외부의 적’을 세움으로써 당이 정말로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가리켜 “4·29 좌파정변의 5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당은 이날 이 대표를 모욕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소했고,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등 13명을 폭행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박대출 의원은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직접 머리를 삭발한 뒤 의원총회에 등장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삭발을 한 것은 2013년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이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청구에 항의하며 삭발·단식 투쟁을 한 뒤로 처음이다. 박 의원은 “이 작은 저항의 물방울이 큰 바다를 이뤄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을 파괴한, 대한민국을 농단하는 저들을 집어삼키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 광화문 거점 전국순회 장외투쟁 검토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직을 내놓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박인숙 의원은 의총에서 “의원직을 총사퇴하고 광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특별당비도 내자”고 건의했다. 홍준표 전 대표도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국회의원직을 총사퇴하고 20대 국회를 마감해라. 지도부도 대통령 놀이는 이제 그만하고 국민과 함께 정권 불복종 운동에 나서라”라고 썼다.
하지만 장외 투쟁과는 별도로 원내 투쟁도 병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나 원내대표는 “불법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해 민주당이 사과한 뒤에 국회 일정을 논의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은 장외 투쟁에 집중하되, 추가경정예산안과 민생 법안 심사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도록 ‘준법투쟁’도 준비할 것으로 관측된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