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레이와 시대]1일 제126대 日王 즉위식
日왕실 보물 전해받는 나루히토 1일 0시에 즉위한 나루히토 새 일왕(의자 앞)이 이날 오전 10시 30분 도쿄 고쿄 내 영빈관에서 열린 첫 공식 행사 ‘3종 신기 계승식’에 참여했다. 3종 신기는 일왕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거울, 검, 굽은 구슬 등 세 가지 보물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11시 10분 첫 즉위 소감으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했다. 도쿄=AP 뉴시스
하지만 평화헌법 대목을 언급할 때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부친과 달리 명확하게 호헌(護憲) 의지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나루히토 일왕이 호헌과 개헌 양론이 나오는 현재 상황을 반영해 중립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평화헌법에 대한 수호 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호헌·개헌 의중 담지 않은 표현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11시 10분 도쿄(東京) 고쿄(皇居)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즉위 후 조현(朝見)식’에 참석했다. 일왕이 된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각료, 지방자치단체장 등 266명의 국민 대표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이에 대해 사도 아키히로(佐道明廣) 주쿄(中京)대 교수는 “나루히토 일왕의 소감은 현행 헌법을 따를 뿐 아니라, 개정된 헌법도 따를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을 개정하자’는 의지를 내비친 것은 아니고, 평화헌법에 규정돼 있는 상징인 일왕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도 교수는 아베 내각이 사전에 문구를 협의해 조정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나루히토 일왕의 첫 발언은 국사(國事)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각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며 “애초 부친과 마찬가지로 ‘헌법을 지킨다’고 표현했지만, 내각이 문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헌법에 따라’라고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아베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소감 직후 미리 준비한 감사 인사 원고를 읽으면서 “일왕으로부터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행사 전에 일왕의 발언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일 전문가들은 나루히토 일왕은 전쟁 경험이 없는 전후세대이고, 30년 전과 달리 현재는 호헌과 개헌 양론이 일본 사회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헌법에 대해 ‘중립적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시대정신을 잘 봐야 한다. 1989년은 전쟁의 기억으로 인해 ‘호헌’이 국민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호헌, 개헌 양론이 있기 때문에 ‘헌법을 지킨다’는 표현 대신 ‘헌법에 따른다’는 말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아키히토 상왕은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평화헌법에 손대지 않겠다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헌법을 지킨다’고 표현했다”며 “하지만 지금 그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일왕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헌법상 일왕은 헌법에 규정된 ‘국사’만을 진행할 수 있고, ‘국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 국사에는 중의원 해산, 국회 소집, 각료 임명 등이 있다. 하지만 모든 국사 활동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왕이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갖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일왕은 권위를, 총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일왕이 호헌, 개헌을 결정할 힘이 없고, 또 결정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나루히토 일왕의 첫 소감 키워드는 평화, 국민, 헌법으로 보인다. 부친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말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도 “나루히토 일왕이 전쟁을 겪지 않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헌법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화, 전쟁 반대 의지가 매우 높다”며 “아키히토 전 일왕과 같은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