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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배임 기준 모호해 경영위축 우려”… 법무부 “위헌 요소 없어”

입력 | 2019-05-02 03:00:00

기업인 취업제한 시행령개정안 논란




배임 횡령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기업인들의 취업 제한 기업을 자신이 소속된 회사로 확대하는 법무부 시행령 개정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기업 총수가 5억 원 이상을 배임 또는 횡령했다면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특히 배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부에 밉보인 기업 총수 길들이기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법무부는 공범이 있는 회사는 취업이 안 되는데 자신이 몸담은 기업에는 취업할 수 있는 부분을 빠르게 손질해 달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있었다며 시행령 개정에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배임죄는 법조문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엇갈린 판결이 나오기 일쑤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배임죄 판결과 2017년 SPP그룹 이낙영 전 회장의 배임죄 판결이다. 김 회장은 2005년 한유통 등 일부 계열사가 경영난을 겪자 수천억 원대의 지급보증과 자금 제공 등 부당 지원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회장은 업무상 배임죄로 결국 처벌받았다.

하지만 이낙영 전 회장은 채권단의 승인 없이 계열사끼리 자금을 빌려주게 했지만 대법원은 ‘계열사 지원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면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낙영 전 회장에 대한 판단이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우리나라는 경영자가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구조조정을 할 때 실패하면 배임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잦다”며 “특히 한화 김 회장의 경우 성공한 구조조정도 처벌받은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엔 업무상 배임죄가 없고 독일, 호주는 경영 판단에 대해선 면책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상황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을 추가해 검찰에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경영상 판단이었지만 나중에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에도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게 한국적 상황이다 보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총수의 경영권 박탈까지 실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밉보인 기업 총수’를 쫓아낼 또 다른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또 헌법과 법률에 적법한 근거 없이 하위법령인 시행령으로 총수 등의 취업 제한을 확대한 것은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시행령은 심각한 자격 제한”이라며 “이는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 법관에 의한 판결로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최지석 형사법제과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14조에 관련 규정이 있고 세부사항을 시행령에 위임해 놓은 만큼 위헌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특경가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11월부터 적용된다.

배석준 eulius@donga.com·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