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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입력 | 2019-05-02 03:00:00

사람의 생명, 돈과 바꿀 수 없어… 기업들 스스로 ‘산재 예방’ 앞장서야




신연수 논설위원

김용균 씨가 사망하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가 편리하고 값싸게 이용하는 전기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지는 줄. 석탄가루로 앞이 안 보이는 화력발전소에서 김 씨는 안전장비도 없이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했다. 심전우 씨와 19세 김모 씨가 성수역과 구의역에서 세상을 뜰 때까진 몰랐다. 우리가 빠르고 안전하게 타고 다니는 지하철에서 그렇게 위험천만한 수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줄.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아닌가, 내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청년들의 죽음은 사실상 내 탓이고 우리 탓 아닌가,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값싸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많은 것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이라는 희생 위에 가능했다. 이제는 좀 비싸게 주고 좀 불편하더라도 귀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뿐이었다. 나 살기 바빠 그 일을 잊어버렸다.

지난주 고용노동부가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근로자의 안전에 큰 영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동안 책임에서 제외됐던 대표이사나 사업 발주자에 대해 산재 예방 의무를 부과하는 등 산안법을 실행하기 위한 시행령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에 부담을 준다”며 반발했다.

특히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거나 중대 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정부가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조항에 대해 남발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중공업 건설업 등의 대형 사업장은 며칠만 작업 중지를 해도 수백억 원의 손실을 본다는 기사들도 나왔다.

사람의 목숨이란 모진 것이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배가 고프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사고가 나도 공장은 돌아가고 매출이 늘어야 다른 근로자들도 가족과 함께 먹고살 것이다. 작업 중지의 구체적 조건이나 사업자의 책임 범위 등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조항들도 있을 테다.

그래도 상황이 이 정도면 정부가 나서기 전에 기업들과 경제단체들이 먼저 ‘산재 추방 운동’을 벌였어야 했다. 한국은 산재 사망률이 수십 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고 수준이고, OECD 평균의 4∼5배다. 단지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불감증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공사 발주자가 근로자들의 안전에 무심했고, 안전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례도 많다. 영국 호주 캐나다 같은 데는 안전조치가 부실해 근로자가 사망하면 기업과 기업인, 정부 관리자까지 징벌적 벌금과 징역형 처벌을 하는 ‘기업살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지속가능경영’이 화두다. 대기업들은 불우이웃 돕기 등 사회공헌 활동에 연간 수백억∼수천억 원씩을 쓴다. 이런 활동도 물론 훌륭하지만 자기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 근로자들의 안전부터 보살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기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업경영자들 같은 사회지도층이 할 일이다. 실제로 근로자들의 안전과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서 경영 성과도 좋은 기업가가 많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시장논리가 경제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 사건으로 젊은 아이돌들의 왜곡된 성(性)의식이 도마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승리가 투자자들에게 성접대를 한 의혹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20대의 젊은이조차 성접대를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격과 목숨보다 돈을 더 중하게 여기는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