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슬로건으로 이 문구를 담은 야구 모자를 ‘매가 햇’이라고 부른다. 대선 당시 트럼프는 매가 햇을 쓰고 미 전역에서 선거운동을 펼쳤다. 트럼프 돌풍과 더불어 이 모자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매가 햇은 트럼프 지지자의 징표로 통한다. 지난달 26일 전미총기협회 연차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거래조약(ATT)의 거부 선언을 했을 때 참석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들은 모두 매가 햇을 쓰고 있었다.
▷이 선거운동용 모자가 100만 개나 팔렸다고 한다. 개당 가격이 45달러이므로 판매금액이 4500만 달러에 이른다. 최근 트럼프 재선 선거캠프의 브래드 파스케일 선대본부장은 한 방송에서 100만 개 돌파 소식을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공학의 예술을 재정의했다는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매가 햇이 히트하면서 ‘미국을 다시 책 읽는 사회로’ ‘미국을 다시 영국으로’ 등 대선 슬로건을 패러디한 문구가 적힌 빨강 모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여기까지야 애교로 볼 수 있으나 문제는 매가 햇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논란의 대상으로 부상했다는 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일각에서 백인우월주의 상징이라거나 인종차별적이란 의심을 받으면서 모자를 둘러싼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부 상점과 식당에서 매가 햇을 쓴 손님의 출입을 제지하거나 서빙을 거부해 말썽을 빚는가 하면 올 2월 한 쇼핑몰에서는 매가 햇을 쓴 부부를 총으로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매가 햇 착용을 금지하는 학교를 학생이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는 곧 트럼프 집권 이후 그의 지지층과 반대편 사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정치적 믿음이 다르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퇴행을 보는 듯하다. 다만, 표 결집을 위해서라면 온갖 방법으로 사회 분열을 부추기는 것이 미국 정치만은 아니라는 점이 걱정스럽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