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노란조끼 시위대 ‘마리안 상’ 파괴… 파손 직후 투입된 복원팀, 원형 복구 문화재마다 담당관 지정해 철벽 관리, 세계 최고 문화재 복원사 배출 체계화
지난달 19일 복구가 거의 마무리된 마리안 상 옆에 있는 브뤼노 코르도 프랑스 국가기념물센터 개선문 담당관.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파리 특파원
그런 마리안 상의 얼굴 오른쪽 부분이 지난해 12월 1일 파괴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유류세 인하 등을 요구하며 아직까지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란 조끼’는 마리안 상 주변의 나폴레옹 흉상, 개선문 모형까지도 처참히 파괴했다. 프랑스의 상징이 훼손된 것에 놀란 정부는 속히 복구 작업에 돌입했다.
약 4개월 반이 흐른 지난달 19일 복구가 거의 마무리됐다는 소식에 개선문을 찾았다. 프랑스 국가기념물센터의 개선문 책임자인 브뤼노 코르도 담당관이 기자를 맞았다. 그와 함께 출입금지 구역인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개선문 1층에서 202개의 계단을 올라 중이층(mezzanine·건물 1층과 2층 사이의 공간)에 도착하니 얼굴이 거의 되살아난 마리안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일 노란 조끼 시위대에 의해 마리안 상의 얼굴 오른쪽이 크게 부서진 직후 모습. 사진 출처 필리프 벨라발 트위터
개선문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만큼 복구 과정도 철저히 매뉴얼과 프로토콜을 따른다. 공모를 통해 문화재 복원 담당자와 큐레이터 등 전문가 6명을 구했다. 이들은 3월 중순부터 부서진 큰 부분부터 맞추기 시작해 오른뺨의 구멍을 최대한 메웠다. 부족한 부분은 석고로 작업하되 색상을 고려했다. 오른뺨, 눈썹, 코를 복원한 뒤 깨끗하게 청소했다. 개선문을 찾은 방문객들도 창문으로 복구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코르도 담당관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는 동시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복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려고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빠른 복구를 칭찬했더니 그는 “프랑스의 상징이 처참하게 파괴되면서 모든 프랑스인이 상처를 입었다. 빨리 복원해야 프랑스인의 상처도 낫는다”고 덧붙였다.
마리안 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콧방울 끝부분이 여전히 약간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원이 덜 된 것 아니냐’고 묻자 코르도 담당관은 “코 윗부분 훼손이 ‘노란 조끼’ 때문인지, 세월에 따른 마모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어 그냥 두기로 했다”고 답했다. 보기에 좋은 예쁜 예술품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파손 흔적과 상처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마리안 상이 있는 중이층에서 계단 36개를 더 올라 다락방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개선문 모형 복구가 한창이었다. 마리안 상은 워낙 무거워 설치 장소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했지만 비교적 가벼운 개선문 모형은 복구 작업이 용이한 곳에서 작업을 했다. 코르도 담당관은 “세 부분으로 부서진 개선문을 각각 따로따로 복원해 마지막에 이 셋을 합체한다”고 설명했다. 코르도 담당관은 “부서진 나폴레옹 흉상은 사설 화실(아틀리에)에 맡겼다. 나폴레옹 재단의 도움도 받았다”며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또 다른 나폴레옹 흉상을 참조해 복구 중”이라고 했다. 마리안 상, 개선문 모형, 나폴레옹 흉상 등 모든 복구품은 5월 중순 공개된다. 작은 창문으로 마리안 상의 복구 작업을 바라보던 중서부 낭트 출신 니콜 씨(60)는 “자유, 평화, 박애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작품이 파손됐다는 소식에 모든 프랑스인이 슬퍼했다”며 “그래도 복원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목재가 많은 노트르담 대성당과 달리 돌로 만들어진 개선문의 화재 위험성은 낮다. 그래도 보안 매뉴얼을 통해 늘 상태를 체크한다. 개선문 곳곳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연기 배출 장치, 실내공기 조절 장치, 엘리베이터 등이 대상이다. 5년에 1번씩 문화재 보안팀이 총점검을 한다. 건물을 구역별로 나눠 화재 사실을 바로 파악하고 대처할 체계도 마련돼 있다.
특히 인파가 붐비는 개선문 내 서점 및 기념물 판매점은 더 촘촘한 감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앙토니 셰뉘 개선문 부담당관은 “화재를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공사 기간”이라고 했다. 용접 등을 진행하며 불꽃이 튀기 쉽기 때문.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도 공사 과정에서 발생했다. 코르도 담당관은 “가장 좋은 탐지기는 경보 체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개선문을 맡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 안전담당자로 근무했는데 당시에도 공사가 끝나면 소방관이 열감지 카메라로 불씨가 남아있는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재 복구 인력을 갖추고 있다. 국립대로는 문화부 소속의 국립문화재학교(INP)와 교육부 소속의 파리1대학 내 문화재보존복원학과(CRBC) 두 곳이 유명하다. 두 학교는 회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그래픽 아트, 고고학 유물, 공예미술품(도자기 등), 인류민속학 등 7개 전공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양성한다. 각 전공별로 매년 1∼3명밖에 뽑지 않아 입학 경쟁이 치열하고 교육의 질도 높다.
CRBC에서 종이(지류) 복원을 전공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일했던 김민중 복원사는 “복원을 흔히 미술의 한 분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학에 더 가깝다”며 “지류 복원을 위해 화학, 곤충학, 균학, 광물학 등도 배웠다”고 했다. 해당 작품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그 재료의 특성은 무엇인지, 복원을 위해서 어떤 화학적, 물리적 작업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복원 분야가 소위 나노 입자 수준으로 정교해지고 있어 각종 최첨단 기술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리안 상 복원 작업을 지켜보면서 문화 강국 프랑스의 저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시위, 화재, 천재지변은 언제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문화재 복구보다 더 중요한 건 예방”이라는 코르도 담당관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