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아더’에서 복수의 화신 모르간으로 분한 리사. 리사는 활화산 같은 분노와 눅눅한 슬픔을 동시에 간직한 악녀 모르간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있다. 사진제공|알앤디웍스
■ 뮤지컬 ‘킹아더’ 리사 인터뷰
전통 뮤지컬과 달리 그루브 있는 넘버
저주의 노래할 땐 어느새 리듬 타게 돼
TV쇼 같은 뮤지컬, 소리 질러주세요
리사를 볼 때마다 ‘이 사람은 못 하는 게 뭘까’란 의문이 들었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이니 연기와 노래, 춤은 기본이고 그림실력도 프로다.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그의 미술작품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와 동료들의 앨범재킷이다. 4개 국어 능통자로 영어 라디오방송의 DJ를 맡은 적도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운동에도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다.
작품얘기를 하기도 전에 “도대체 못 하는 건 없습니까”라고 묻고 말았다.
리사는 요즘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고 있는 프랑스 뮤지컬 ‘킹아더’에 출연 중이다. 주인공 아더왕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미는 악녀이자 이복누이 ‘모르간’ 역이다. 악녀의 이미지는 뮤지컬 ‘레베카’에서 이미 ‘댄버스 부인’으로 한 차례 보여준 바 있다.
킹아더에는 두 명의 중요한 여성이 등장한다. 아더왕을 사랑하는 ‘귀네비어’와 아더왕을 미워하는 ‘모르간’. 귀네비어 역이라면 어땠을까.
“귀네비어는 예쁜 역할이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부르고 싶은 넘버가 있고 드레스도 아름답다. 이런 말은 그렇지만 난 뭐 이제 나이도 좀 있고, 더 예쁘고 젊은 친구들이 하는 게 맞다. 난 이제 새로운 걸 해야지(웃음).”
프랑스 뮤지컬은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의 전통적인 뮤지컬과 결이 많이 다르다. 리사는 가장 큰 차이를 음악에서 찾았다.
대표적인 장면이 모르간이 킹아더 앞에 처음 나타나 ‘대가를 치러야 해’를 부르는 순간이다. 검은 베일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등장한 모르간은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재미있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은 어두운 과거의 폭로요 저주이자 복수의 선언이다.
이렇게 해놓고 부르는 넘버 ‘대가를 치러야 해’는 빠르고 경쾌하다. 안무까지 살짝 삽입된다. 마치 TV쇼를 보는 것 같다.
리사는 “우리 공연을 관객들께서 더 많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장면 사이사이에)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 소리도 질러 주시고. 배우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숨죽여 보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아더왕은 한지상, 한승조, 고훈정이 트리플 캐스팅됐다. 이 중 한지상은 리사가 2008년 뮤지컬 ‘밴디트’로 데뷔할 때부터 함께 한 사이다. 세 배우는 한 눈에도 개성이 매우 다르다. 당연히 아더에 대한 해석도, 연기도 다르다.
리사는 고훈정에 대해서는 “한 번도 나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깨끗한 왕의 느낌”이라고 했다. 극 후반에 아더의 긴 독백신이 있는데, 연기가 아니라 정말 속에서 꺼내는 듯한 진심이 느껴진다고.
리사는 모르간에 대해 “이 작품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더와 귀네비어의 결혼식에서 홀로 부르는 ‘사라져버린 꿈’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한 배우의 연기를 두고 ‘농익은’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면, 현재의 리사가 제대로일 것이다. 리사의 배우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연기’를 보고 싶다면 ‘킹아더’는 두 번쯤 볼 가치가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