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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어린이날에는 아들 생각 더 나요”

입력 | 2019-05-03 03:00:00

백혈병 골수검사 받고 아들 잃은 허희정씨 ‘눈물의 장탄식’
영남대병원 레지던트-인턴 등 2명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




2017년 영남대병원에서 백혈병으로 골수검사를 받다 숨진 김재윤 군의 어머니 허희정 씨가 1일 대구 수성구의 자택에서 김 군의 장난감을 들어 보이며 슬픔에 잠겨 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재윤이 방은 모든 게 그대로다. 재윤이가 앉던 의자, 읽던 책, 입던 옷, 좋아하던 과자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다. 재윤이만 없다.

2017년 11월 29일 아침부터 고열에 시달리던 김재윤 군(당시 5세)은 어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영남대병원에 갔다. 백혈병 항암치료가 4개월 뒤면 끝날 때였다. 그날 오전 이후 김 군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에서 골수검사를 받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음 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김 군의 어머니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해 어린이날 김 군의 방에 로봇자동차를 사다 뒀다. 김 군이 무척 좋아했던 장난감이었다.

1일 대구 수성구 자택에서 만난 어머니 허희정 씨(40)는 “아들은 매년 어린이날과 생일 때 항상 병원에 있었다”면서 “그 사고만 없었다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군은 두 살이던 2014년 11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보통 3년 4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으면 환자의 90%는 완치되는 병이라고 했다. 김 군은 예후가 좋았다고 한다. 이전 네댓 번 골수검사에서도 줄곧 정상 판정을 받았다.

김 군이 숨졌을 때부터 의료사고를 주장했던 유족은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경찰에 고소했다. 응급장비가 있는 처치실이 아닌 일반 주사실에서 무리하게 골수검사를 받다 이상이 생겼고 이후 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숨졌다는 것이다.

최근 경찰 수사를 통해 의료진의 과실이 일부 드러났다. 진정제와 진통제를 투여하고 골수검사를 한 뒤 김 군이 청색증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지만 의료진이 산소포화도 수치 같은 모니터링을 소홀히 해 제때 응급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병원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의료진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Fentanyl)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로 마취보조제로 쓰이는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50∼100배 정도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다흡입하면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병원 측은 펜타닐을 사용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지난달 5일 당시 김 군의 골수검사를 했던 영남대병원 레지던트 1명과 인턴 1명을 각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유족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주치의 A 교수도 수사할 것을 검찰에 요구하고 있다. 유족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진행 중이다.

허 씨는 “의료진이 재발을 의심해 골수검사를 강행했는데 결과는 정상이었고 아들의 고열은 감기 때문으로 추정됐다”며 “무리하게 검사만 하지 않았어도 아들은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 씨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9일 대구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계획이다. 조만간 검찰에 탄원서도 내기로 했다. 환자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도 요구하고 있다.

A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내용을 밝혔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남았고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병원 공식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