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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후죽순 현금복지, 겉핥기 16분 심사

입력 | 2019-05-03 03:00:00

지자체 남발 견제해야 할 복지부… 논란 큰 사업도 졸속심사로 ‘통과’
작년 신설 10억이상 복지 36건중… 외부전문가 검토 거친 건 3건뿐




경기 김포시는 지난해 12월 관내 모든 중고교생에게 한 명당 30만 원의 수학여행비를 지원하는 데 예산 21억 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수학여행비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는 10여 곳이지만 가정형편을 따지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지원하는 건 김포시가 처음이었다. 학계에선 이 사업을 허용하면 ‘무상 급식’과 ‘무상 교복’에 이은 현금 퍼주기 경쟁이 가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김포시의 계획을 받아 든 보건복지부는 전문가 회의를 1차례도 열지 않았다. 협의 요청 접수부터 최종 동의까지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현금 복지를 확대하고 있지만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이를 적절히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협의를 거쳐 지난해 신설된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 사업(연간 예산 10억 원 이상)은 36건이다. 그런데 복지부가 2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중 25건은 전문가의 공식 검토를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 규모가 상당한 사업조차 공무원의 자체 심사만으로 통과된 것이다.

나머지 11건은 국책연구원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축인 ‘협의지원단’ 회의를 거쳤다. 하지만 협의지원단 회의가 열린 시간은 안건 1건당 평균 16분에 불과했다. 18∼39세 도민이 취업 면접을 보면 재산과 무관하게 최대 30만 원을 주는 경기도 ‘청년 면접수당’ 사업을 검토할 땐 회의가 총 4시간 만에 끝났다. 같은 날 다른 안건 16건도 함께 심사해야 했기에 청년 면접수당 논의에만 할애한 시간은 1시간도 되지 않았다. 도민 설문조사에서 찬성률이 46.4%에 그칠 정도로 논란이 컸던 사업을 겉핥기로 졸속 심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협의지원단을 통과한 사업 중 외부 전문가까지 포함된 ‘신설변경 사회보장제도 협의회’의 추가 검토를 거친 것은 강원도 ‘출산장려수당’(3세 이하에게 월 30만 원 지원) 등 3건뿐이었다. 문제는 이 회의에서도 정부나 지자체가 출연한 기관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다수를 이룬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사전 협의를 충분히 하기 때문에 회의 시간이 짧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협의지원단과 협의회 회의록을 제출해 달라는 요청에는 “회의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 충남도 아기수당, 기존 아동수당과 대상 - 금액 겹치는데 ‘통과’ ■

충남도는 지난해 만 1세 미만 아동 1만5500명에게 월 10만 원을 주는 ‘아기수당’ 사업을 신설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아동수당(만 6세 미만에게 월 10만 원)과 액수가 똑같고 지급 대상도 겹쳤다. 사회보장기본법상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기존 제도와 중복되는 사업을 신설할 수 없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충남도로부터 협의 요청을 접수한 지 한 달여 만에 이 사업을 통과시켰다. 아동수당과 아기수당은 사업 목적이 각각 ‘아동의 권리’와 ‘저출산 대응’으로 엄연히 다르다는 논리였다. 충남도가 아기수당 협의 요청서를 제출하며 사업 목적을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의 아동수당 지급과 같다”고 명시한 점을 감안하면 복지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복지 제동권’ 포기 후폭풍 속출

복지부는 지난해 1월 사회보장제도 협의 지침을 바꿔 지자체의 신설 사업에 대해 정부가 내릴 수 있는 ‘부동의(不同意)’ 결정을 없앴다. 지자체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며 제동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의 요청에 정부가 최종 동의한 비율은 현 정부 출범 전 80.3%에서 출범 이후 91.6%로 높아졌다. 복지부는 신설 사업의 타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면밀히 따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곳곳에서 부실 심사의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 ‘유급병가’ 제도다. 저소득층(중위소득 이하)이 질병으로 입원하면 하루 생활비 8만1184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예상 수급자를 1만4610명으로 내다보고 소요 예산을 62억 원으로 책정했다. 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축인 ‘협의지원단’과 외부 전문가까지 포함된 ‘신설변경 사회보장제도 협의회’를 각각 한 차례씩 열어 이 제도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서울시는 90억 원가량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새로운 계산 결과에 따라 복지부에 재협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당초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의 건보료를 기준으로 소득을 파악했는데 복지부의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활용하면 수급 대상이 7만여 명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협의 과정에서도 인지한 사실이지만 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 건보료를 기준으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사업의 협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 사례도 있다. 복지부는 연간 423억 원이 들어가는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 사업(산모 1명당 50만 원)을 전문가 회의도 열지 않고 통과시켰다. 이와 유사한 산후조리비 지원 사업을 2017년에 강원 속초시 등 5개 시군이 신설하겠다고 했을 땐 동의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 전문가 선정 기준도 깜깜이

또 다른 문제는 누구에게 심사 검토를 맡길지 기준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협의회 전문가 인력 풀(pool)’을 구성해 이 명단에 등재된 74명 중 관련 사업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일정이 맞는 전문가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해당 명단의 전문가 중 10명을 무작위로 인터뷰해 보니 7명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그런 인력 풀에 속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답했다. 아동 및 보육 전문가로 이름을 올린 A 교수는 “협의회가 뭐하는 기구냐”라고 반문했다. 과거 정부에서 2주에 한 번꼴로 협의회 회의에 참석해 여러 차례 신설 복지 제도에 반대했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1년간은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실한 협의 절차는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복지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연간 예산 10억 원 이상의 현금성 복지 제도를 신설한 지자체 중 강원도와 전북 완주군 등 7곳은 재정 자립도가 30%도 되지 않았다. 이런 부실 재정 속에서도 복지를 확대하는 이유는 인근 지자체로부터 인구를 끌어와야 정부가 주는 지방재정교부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시군구일수록 무리하게 복지를 확대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대해선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인 검토를 내실화하고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송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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