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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계절의 여왕이 위협을 받다

입력 | 2019-05-04 03:00:00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감미로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 푸르른 하늘로 가히 여왕의 품격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영어로 5월을 뜻하는 메이(May)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봄의 여신인 마이아(Maia)에서 유래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들이 화려한 5월의 꽃들(mayflower)과 함께 만개하는데, 그중 장미의 아름다움을 당해낼 꽃이 없다. ‘5월의 장미’는 여왕의 고고함을 웅변적으로 상징한다.

5월에는 장미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장미는 낮 기온이 24∼27도, 야간에는 15∼18도일 때가 최적의 생육 온도다. 그래서 장미는 서울 기준으로 5월 중순에 가장 아름답게 개화해 축제를 장식한다. 그러나 장미는 원래 6월의 꽃이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장미는 6월이 돼서야 개화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장미는 6, 7월에 핀다고 돼 있고 6월의 탄생화는 여전히 장미로 남아있다. 그러던 것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개화시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장미가 5월의 꽃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온난화의 영향은 비단 장미뿐만이 아니다. 올봄 벚꽃 개화시기를 정확히 맞힌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머지않은 미래에 어쩌면 성탄절에 벚꽃이 피는 ‘핑크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비친 적이 있다. 지구온난화가 지금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장미가 ‘잔인한 달 4월’의 꽃으로 또다시 자리를 옮겨갈지도 모를 일이다.

계절의 여왕이 그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5월은 푸르구나’라며 어린이날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꽃구경을 가야할 텐데 미세먼지 때문에 결코 푸르른 어린이날이 되지 못할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산과 들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했다 해도 미세먼지로 집안에 갇혀 있게 된다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예찬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달 중순 이후에는 5월이 계절의 여왕으로서의 품위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쯤이면 장미꽃이 만개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중국의 미세먼지를 실어 나르던 겨울 계절풍인 북서풍이 여름 계절풍인 남동풍으로 풍향이 바뀐다. 겨우내 우리를 괴롭혔던 중국 미세먼지를 되돌려 보낼 수 있다. 또한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의 대류 공간이 높아져 국내 발생 미세먼지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5월은 드디어 여왕의 자태를 제대로 과시하게 될 것이다. 계절의 여왕을 결정하는 것은 ‘꽃보다 미세먼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신히 되찾은 여왕의 지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여왕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복병이 5월 폭염이다. 원래 폭염은 6∼9월에 나타나는 이상고온 현상인데, 기상청은 일평균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되면 폭염특보를 내렸다. 그러던 것이 2014년 이후 5월 하순에 폭염특보를 발표하는 날이 지속되고 있다. 그 원인은 역시 지구온난화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지구온난화가 계절의 여왕을 위협하고 있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